무거운 숙제
무거운 숙제
  • 제주일보
  • 승인 2020.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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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명상가

영혼들의 세계에는 지름길이 없어 인내의 한계를 시험한다. 시간은 필요에 의해 잠시 만들어낸 허구이며 위대한 자유의지는 누구의 간섭 없이 자기 스스로의 발전을 위한 과정이다. 좋고 나쁨을 판단하기 이전에 순간에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평가받는다

죽음 앞에서 부와 명예는 방해꾼이요, 갚아야 할 빚이다. 수의에 주머니가 없는 이유는 우리 선조들의 깨우침이다. 환영 박수는 없어도 부끄러워 고개 숙이지 않는 상식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어렵고 힘든 고비에 과거의 잘못이 불현듯 꺼내지는 것은 새로움을 택하라는 신의 목소리이다

서울 근교에서 요양원을 운영하는 이는 투명한 경영으로 환자나 가족에게 늘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아낸다. 한번 들러달라는 부탁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며칠 전 환자가 들어왔는데 미리 양해를 구했으니 만나보라고 권유하였다. 교직 생활을 하다가 정년퇴직을 하였는데 이곳에 입원하기에는 이른 나이였다. 건강만큼은 자신이 있었는데 급작스럽게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었단다. 몇 해 전 부인과 사별을 하고 외동아들도 이제 신혼이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약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의 지나온 여정을 되짚어보았다.

젊은 시절 혼전 동거로 자녀를 낳았으나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뜨겁게 사랑했지만 대대로 유교적인 집안의 반대가 무서워 준비 없는 이별을 하고 말았다. 늘 마음을 괴롭혔지만 애써 외면해야 했던 불편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전생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보고 느낀 것을 전해주었더니 자책하며 한숨을 쉬었다.

후회는 빠를수록 좋다고 문제 해결을 위해 옛 연인과 연락할 방법이 있냐고 물으니 이름과 주소가 적힌 빛바랜 사진을 꺼내 보였다. 미뤄서 될 일이 아니기에 수소문을 하라고 당부하고 무거운 걸음을 옮겨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 상봉을 하였는데 그때의 처녀는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행복한 미소를 띤 중년이 되어 있었고 또 다른 아들은 각고의 노력 끝에 선생님이 되었다. 손주도 둘이나 있었다. 피는 물보다 진한 법이다. 슬픔보다는 그리움이 컸던 만큼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미기로 했고 한참이나 지났지만 둘만의 결혼식의 증인이 되어달라는 연락은 기쁨보다는 감동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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