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봄
그래도 봄
  • 제주일보
  • 승인 2020.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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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숙 수필가

이십사절기 중 세 번째 절기인 경칩이다. 증명이라도 하듯 하늘이 맑고 푸르다. 멀리 보이는 수평선의 잔잔함은 흔들리는 마음을 고요로 이끈다. 하늘과 바다의 공동작품으로 은빛 물결을 만들어낸다. 옛 어른들은 경칩을 손이 없는 날로 집 안과 밖을 정비하는 일을 하였다고 한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봄이 왔지만 봄을 노래할 수 없다. 해마다 삼사일 먼저 봄소식을 알려오는 서귀포에 사는 후배에게선 아직 소식이 없다. 여느 해 같았으면 꽃구경으로 붐볐을 산과 들녘은 한산하기 그지없다. 공존과 공생의 관계인 자연과 인간이 지금처럼 무심하게 바라봤던 때가 있었을까.

일상은 멈춰버리고 인터넷과 텔레비전 뉴스는 코로나19로 시작해서 코로나19로 끝이 난다.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아주 작은 바이러스가 나의 삶을, 우리의 일상을, 세상의 판도를 바꿔 놓았다. 공무원과 의료진, 나라의 온 힘을 이 바이러스 퇴치에 진을 빼는 중이다. 삶의 변화는 지척에서 시작되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인사하는 것이 무례한 행동이 되어 버렸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은 상대방을 오히려 불편하게 만든다. 가뜩이나 멀어진 이웃 간의 거리를 더 벌려놓았다. 타인을 위한 배려로 마스크를 쓰는 것은 인지상정이 되었다.

마스크 때문에 표정을 잃어버린 사람들. 얼굴을 감추기 위해 범죄에 사용하거나 얼굴이 많이 알려진 연예인들이나 썼던 마스크는 필수 아이템이 되었다. 마스크는 이제 귀한 물건이 되어 신분증을 제시하여야만 살 수 있게 되었다. 마스크를 사기 위해 길게 늘어진 줄을 보면서, 형언할 수 없는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전해져 온다.

멕시코에서는 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맥주 회사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브랜드의 이름이 코로나’. 코로나는 왕관이나 광륜을 뜻하는 라틴어 코로나에서 유래되었다.

코로나바이러스를 전자현미경으로 보면, 가장자리에 둥글납작한 표면이 왕관의 모양을 하고 있어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를 구분하지 못하는 어떤 이는 나라의 총리를 잘못 세워서 코로나가 창궐하고 있다는 웃지 못할 말을 남기기도 했다.

과연 내년 이맘때쯤에는 꽃소식을 들을 수나 있는 걸까. 잃어버린 우리의 일상이 제자리를 찾는 날은 언제쯤일까. 너무 평범해서 가치조차 부여하지 않았던 일상은 우리에게 높은 이상이 되고 말았다. 보통의 날이 너무나도 간절한 또 하루를 보낸다.

주변을 둘러볼 여유조차 없던 시절이 있었다. 불안한 미래, 암담한 날들. 다가오는 문제에 맞서 발버둥을 쳐봤지만 아무 소용없음을 한참을 지난 뒤에 깨달았다. 돈과 명예, 지식도 비껴가지 않는 코로나바이러스의 공평함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은 것일까.

동면했던 땅속의 동물들은 이제 동면을 풀고 뛰쳐나와, 조물주가 허락한 대지 위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는 자신들의 시간이 왔음을 알고는 있는 걸까. 우리의 봄은 어디쯤 오고 있는 것일까. 코끝을 스치는 바람에 제법 따사로움이 묻어난다. 이제 봄바람이 꽃들을 불러낼 것이다.

상상한다.

누군가 바지런히 돌아가던 우리의 일상에 일시정지 버튼을 눌러버렸다면, 이제 재생 버튼을 눌러 주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그리고 덧붙인다.

이 고통의 시간이 길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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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2020-06-10 19:01:47
아름다운 글이네요 어서 예전처럼 돌아가고싶습니다ㅜ

동심 2020-06-10 18:54:18
공감 되는 글이네요~ 일상이 너무 그리운 나날입니다.
뜨거운 여름에 마스크까지 우째 견딜꼬 싶습니다..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