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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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주 칼럼니스트

‘주식형제천개유(酒食兄弟千個有) 금난지붕일개무(急難之朋一個無)’명심보감 교우 편에 나오는 글이다. 술과 음식을 함께 먹는 친구는 많지만 위급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친구는 드물다는 뜻이다. 이 글이 요즘 모바일 메신저에 오르내린다. 이 시대의 우정 세태를 반영하는 게 아닌가 한다.

우리의 삶에서 행복을 느낄 때는 많다. 취직하고, 승진하고, 자식 낳고, 집 장만하고, 새 차를 살 때 등 헤아리기가 어려울 정도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좋았던 일들은 희미하게 잊히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오히려 그보다 훨씬 이전의 어릴 적 일들이 더 또렷하게 떠오른다. 개구쟁이 친구들과 어울려 들판을 쏘다니고, 시냇물에서 물장구치며 놀았던 일들, 운동회 때 친구와 눈깔사탕 나눠 물고 깔깔대던 일들이 눈앞에 어른거리며 이맛살을 펴준다. 밥 때를 잊을 정도로 친구와 어울려 놀던 어린 시절의 추억은 세월을 넘어 평생에 걸쳐 우리 주위를 맴돈다.

그러함에도 진정한 친구를 꼽으라면 망설여진다. 바쁘다는 핑계로 어릴 적 친구들과의 교유도 끊기고, 새로운 친구 사귀는 일도 등한시했기 때문이다. 외려 친구에게 이용당하여 고통을 겪는 사례들을 접하면서 사람에 대한 불신만 쌓여간다. 그러니 만남은 요란한 것 같으면서도 고락을 함께 할 진정한 친구는 선뜻 내세우지 못하는 것이다.

마음의 정보다는 물질을 우선시하는 세태 탓도 더러 있다. 돈만 있으면 친구가 없어도 즐기며 사는데 별 지장이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지고, 우정에도 손익 계산이 끼어든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죽마고우는 있어도 노년까지 이어지는 절친 관계는 드문 듯하다. 물질주의로 흐르는 시대 탓인지, 아니면 우정에 대한 인식의 변화 때문인지 모를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순수한 감정도 메말라간다. 어린 시절과 어른이 된 후의 삶의 격차가 너무 커서 서로 어울릴 수 없는 수준이 되어버린 경우도 적지 않다. 이리 재고 저리 따지다보면 친구를 들일 마음의 여유도 사라지고. 심지어는 마음을 꽁꽁 닫아걸고 혼자 지내는 게 편하다고 여긴다. 우리 사회에 고독한 노인이 많은 이유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 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우화의 강’이란 시의 일부다. 죽고 사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라 했다. 우정을 쌓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사랑보다 우정이 오래간다고들 하지만 이제는 사랑이나 우정도 인스턴트식품처럼 즉석요리로 해치우는 시대다. 맺어지기도 쉽지만 헤어지기도 쉽다. 진정한 우정이란 추억 속에서나 떠올릴 수 있는 박제된 유물일지도 모른다. 나이 먹고 저마다의 가치관이 확립된 후의 우정은 어린 시절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함께 어울려 놀던 우정을 따르지 못한다. 어릴 적 철부지 우정이 그리워지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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