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된 수도원…‘사랑의 폭군’ 헨리 8세의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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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영국 휘트비
인구 1만5000명 항구도시
항해가 제임스 쿡의 고향
폐허가 된 휘트니 수도원
소설 ‘드라큘라’의 배경
휘트비 기차역 광장에서 바라본 정경. 에스크강 건너 위쪽이 휘트비 수도원 언덕, 그 아래쪽은 구도심 이스트 클리프 지역이다. 휘트비는 에스크강을 기점으로 웨스트 클리프와 이스트 클리프로 나뉘는데 비치가 있는 서쪽은 기차역이 있는 신시가지이고, 휘트비 수도원이 속한 동쪽에는 오래된 상가들이 촘촘하게 밀집돼 있다.
휘트비 기차역 광장에서 바라본 정경. 에스크강 건너 위쪽이 휘트비 수도원 언덕, 그 아래쪽은 구도심 이스트 클리프 지역이다. 휘트비는 에스크강을 기점으로 웨스트 클리프와 이스트 클리프로 나뉘는데 비치가 있는 서쪽은 기차역이 있는 신시가지이고, 휘트비 수도원이 속한 동쪽에는 오래된 상가들이 촘촘하게 밀집돼 있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명곡 스카버러 페어가 귀에 익다면 한 번쯤 궁금했던 적도 있었을 것이다. 노래 속 그곳은 어디쯤일까?

영국의 허리 부분인 잉글랜드 북부, 그 안에서도 노스요크셔 주의 동쪽 끝에 스카버러가 있다노래처럼 스카버러 시장이 열리던 그곳, 북해 바다에 면한 오래된 해안도시다.

스카버러에서 차를 몰고 북쪽으로 20분을 올라가면 해안가에 있는 작은 도시 휘트비(Whitby)가 나온다스카버러와 함께 잉글랜드 북부의 2대 휴양 도시이지만, 우리에게 휘트비란 이름은 낯설다. 중세풍의 해안 도시라는 것, 노스요크 무어스 국립공원에 속한다는 것, 그리고 잉글랜드 북부에선 유명한 휴양지라는 점은 스카버러와 똑같은 공통점들이다.

휘트비는 인구 15000명의 조그마한 항구도시다. 이곳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휘트비 수도원이다. 기차역 맞은편의 강 건너 높다란 언덕에 위치한다. 영화 속 폐허가 된 중세의 고성 같은 느낌이다. 이 도시를 상징하는 랜드마크이기도 하다.

휘트비는 에스크 강을 기점으로 웨스트 클리프와 이스트 클리프로 나뉜다. 비치가 있는 서쪽은 기차역이 있는 신시가지이고, 휘트비 수도원이 속한 동쪽은 오래된 상가들이 촘촘하게 밀집돼 있다. 구시가 도심이 보여주는 중세 골목의 운치, 수도원 언덕에 올랐을 때의 북해 바다 모습, 그리고 반대편 웨스트 클리프 비치에서 올려다보는 수도원 언덕의 정경, 이 세 가지가 휘트비 여행의 경관 포인트들이다.

휘트비를 효율적으로 여행하기 위해서는 두 개의 루트를 따르는 게 효율적이다. 휘트비 역 광장에서 출발해 에스크강 강변을 따라 북해 해변의 캡틴 쿡 동상까지 갔다가 돌아오고, 이어서 에스크강을 건너 휘트비 수도원 언덕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동선이다. 전자가 서쪽 코스이고, 후자가 동쪽 코스다.

서쪽 코스는 휘트비 역-워 메모리얼-뉴웨이 로드-강변길 페어 로드-휘트비 밴드 스탠드-캡틴 쿡 메모리얼-고래뼈 아치-스윙 브리지 순이고, 동쪽 코스는 스윙 브리지-처치 스트리트-199 계단-캐드몬 메모리얼-휘트비 수도원-캐드몬스 트로드-카페 크리에이션-캡틴 쿡 박물관-스윙 브리지-휘트비 역 순이다.

이동 거리는 서쪽이 비치까지 왕복 1.5, 동쪽이 수도원 다녀오는 순환길 2. 워낙 아담한 소도시라 두 코스를 모두 합쳐도 총 3.5에 불과하지만 느긋이 12일 여행이면 좋다. 인근 현지인들이 이곳 피시 앤 칩스를 맛보기 위해 일부러 오기도 하는 만큼, 시간을 들일 가치는 충분한 여행지다.

휘트비는 세상에 캡틴 쿡으로 알려진 제임스 쿡이 젊은 시절부터 바다에서 꿈을 키우고 항해가로서의 인생을 시작한 곳이다. 태평양이란 바다를 처음으로 속속들이 유럽 세계에 알린 그의 모습은 휘트비 웨스트 클리프의 해변에서 동상으로 만날 수 있다. 휘트비 항구와 북해를 바라보고 서 있는 모습이다. 정작 이 주변에 모여든 여행자들은 캡틴 쿡의 위용보다는 주변 정경에 온통 정신이 팔려 있다. 반대편 이스트 클리프의 수도원 모습과 그 아래 구도심의 울긋불긋한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풍광 때문이다.

해변에서 항구 쪽으로 내려와 빨간색 스윙 브릿지를 건너면 구도심 이스트 클리프 지역이다. 다리 하나를 건넜을 뿐인데 분위기는 확 바뀐다. 거리도 골목도 건물도, 심지어 사람들도 복고풍으로 변한 분위기다. 다리 너머 경쾌하고 발랄했던 현대풍 기운이 묵직하고 진중한 중세풍으로 슬며시 바뀌는 것이다. 길 양편으로 기념품 가게와 카페, 레스토랑들이 즐비한 골목은 여행객들로 늘 붐빈다.

구도심이 끝나는 길목에는 유명한 계단 길이 앞을 막아선다. 휘트비 수도원을 가기 전에 볼 수 있는 세인트 메리 교회(St. Mary's Church)까지 올라가는 ‘199계단이다. 계단 수가 199개가 맞는지 재미 삼아 세어보는 이들도 있다고 하는데 대부분 실패하는 모양이다. 계단을 올라갈수록 더 장엄해지는 주변 풍광을 둘러보느라 세던 숫자를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계단 끝 세인트 메리 교회 앞에서 숨을 고르고 주변을 둘러보면 휘트비 항구와 북해의 해안선이 꿈속 정경처럼 그윽하게 펼쳐진다.

헨리 8세가 허물어트린 이후 지금까지 폐허로 남아있는 휘트비 수도원의 모습.
헨리 8세가 허물어트린 이후 지금까지 폐허로 남아있는 휘트비 수도원의 모습.

오르막 끝으로 우뚝 솟은 폐허의 수도원이 반대편 해안선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휘트비 어디에서나 시야에 들어오는, 휘트비의 랜드마크이자 상징물이다

저렇게 폐허가 된 것은 16세기 튜더 왕조 헨리 8세 때이다. 왕자를 못 낳는다는 이유로 왕비 캐서린과 이혼해 궁녀 앤 불린과 결혼하고 싶었던 헨리 8세였다. 이를 인정하지 않는 로마 교황에 반기를 들고 가톨릭과 결별해 영국 성공회를 설립했다. 이혼 후 새 왕비로 맞은 앤 불린마저 천일의 앤으로 참형에 처한 헨리 8세는, 1539년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는 수도원들을 해산시키고 영지를 몰수했다. 거기에 이곳 휘트비 수도원도 예외일 수가 없었고 그때 허물어져 지금까지 500년 세월을 저렇게 폐허로 남아있다.

브람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속 배경이 바로 여기라는 사실과 소설을 시작하기 전 작가가 영감을 받은 곳 또한 여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주변 광대한 면적에 펼쳐진 수도사들의 묘지는 더욱 음산하게 느껴진다. 이름이 지워졌거나 희미하게 남은, 수없이 많은 묘비들이 세월과 풍파의 흔적을 남기며, 각기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채 고요하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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