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지 않은 미래의 길목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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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철, 제주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논설위원

규정을 고집하는 것은 확정된 과거에 맞추는 것이며, 과거에 맞추는 것은 과거로의 회귀이지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다.

발전적인 사람은 과거를 습득하여, 아직 경험하지 않은 미래를 만들어간다. 그러나 과거에 갇혀 있는 사람은 열심히 과거를 습득하지만, 미래를 설계할 수 없어서 착할지는 모르나 항상 남의 뒤만 따라가는 사람이다.

물론 과거를 따른다고 항상 악이고, 미래를 추구한다고 항상 선인 것은 아니다. 두 가지는 비록 선악을 따질 수는 없지만, 인공지능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미래의 세상에서 타인까지도 과거를 따르라고 통제하는 것은 도덕적으로는 악이라고 할 수 없을지라도 또 다른 양상의 악이 될 수 있다.

아직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은 험난하고 두렵다. 그러나 과거 경험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예견할 수 없는 미래상황이 궁금하고, 혹시라도 예상한 것과 합치되면 유쾌할 수도 있다.

세상에 태어났으니 마음껏 즐기며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면,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과거의 것을 잘 살피며 살면 편하고 좋을 것이다. 그러나 혹시라도 만족한 돼지가 되어 그저 생명 유지만을 위해 사는 것보다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 한다면, 모두의 삶에 도움이 되는 무엇을 찾거나 만들어 보면 어떨까? 물론 그것조차도 죽고 나면 별 의미가 없을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렇게 살아보는 것이 통제하는 누구에게 순종하며 그들의 개가 되어 사는 것보다는 재미있을 것 같다.

힘을 쓰는 자리에 앉아 완장을 찼으니 마음껏 즐기는 것이 목적이라면 완장차신 그대들 멋대로 하시게나. 그러나 뭇 사람에게 추앙받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무엇인지는 모르나 이 사회에 남는 어떤 것을 찾아, 과거를 깨고 미래를 찾아보아야하지 않겠는가?

그것은 당신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더욱이 당신의 입만 쳐다보며, 당신의 눈치만 살피는 당신의 충견들은 결단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직 당신 스스로 당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며 적극적으로 수용할 때 이룰 수 있는 일이다.

내 안에 갇혀서는 나를 볼 수 없다. 내 밖에서 나를 보아야 내가 보인다.

추종자들에게 쌓여 추종자들의 말을 듣는 것은 당신의 말을 듣는 것이다. 당신의 잘잘못은 당신 밖의 사람에게 들어야 한다. 남의 말에 귀 기울여,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한다.

난 돈도 명예도 권력도 많은 것을 갖고 싶다. 그러나 스스로 만들어 가질 뿐, 결코 남의 것을 빼앗지는 않는다. 그래서 정당하였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빼앗기는 것에는 분노하며, 그렇지 않은 사회에 불만이 많다.

혹여 무리를 이루어 작당하던 자들이 뜻을 이루어 완장을 차고 서로 자리를 주고받으며, 사람들 위에 군림해 남의 것을 제 것인 양 빼앗고 전혀 합리적이지 못한 지식 같지 않은 지식을 고집하면 개탄스럽다.

온갖 것은 변하니, 그때는 옳았으나 지금은 그를 수 있고, 그곳에서는 옳았으나 이곳에서는 그를 수 있어서, 어느 하나가 반드시 옳거나 그르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남을 짓이겨 빼앗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설혹 빼앗지 않더라도 적당한 이유를 들어 방해하는 것은, 언제 어느 때라도 잘못이다.

모두가 고루 잘살자고 하니 참으로 좋았는데, 지나고 보니 저희들만 잘살자고 한다.

지난날은 분개하며 살았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났으니, 혹시나 했더니 지금도 그러하니, 미래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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