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북포는 섬의 목구멍이면서 배의 요긴한 나루입니다”
“화북포는 섬의 목구멍이면서 배의 요긴한 나루입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46) 해신사와 김정 목사
제장으로 사용되던 해신사
선박 출항 전 제사 지내던 곳
김정 목사, 화북포 건설 앞장
조천포 이은 교통항 마련돼
제주도기념물 제22호 해신사의 모습. 해신사는 1820년 한상목 목사가 화북포구에 설립한 이후 정월대보름이나 선박 출범 전에 제사를 드리는 제장으로 사용됐다.
제주도기념물 제22호 해신사의 모습. 해신사는 1820년 한상목 목사가 화북포구에 설립한 이후 정월대보름이나 선박 출범 전에 제사를 드리는 제장으로 사용됐다.

제주도기념물 제22호인 화북 해신사는 1820년 한상목 목사가 화북포구에 설립한 제장이다. 1841년 이원조 목사가 증수하고, 1849년 장인식 목사가 이곳에 해신지위(海神之位)라고 새긴 돌 위패를 안치했다

해신사가 화북포구에 세워진 것은 조천포와 더불어 제주의 대표적인 해상 관문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질토래비 여정에서는 해상의 무사고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던 해신사에 얽힌 이야기와 화북포구에서 생을 마친 김정 목사의 삶을 들여다본다.

바다를 무사히 건널 수 있게 도와주소서

해신사는 해마다 정월대보름이나 선박이 출범하기 전에 제사를 드리는 곳인 제장으로 사용됐다

일제강점기에 제의가 폐지된 이후 해신제는 화북 마을의 어부와 해녀들을 중심으로 해상의 무사고와 풍요를 비는 제사로 변화했으며 최근에는 화북 마을 전체의 무사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마을제로 바뀌었다. 현재 해신제는 화북동의 유일한 마을제로 음력 15일에 제를 올린다. 다음은 해신사 입구에 있는 화북포에 대한 표지석(禾北浦遺址) 내용이다

조선시대 조천포구와 함께 제주의 관문이 되었던 포구, 1737(영조13) 항만이 불완전하여 풍랑이 일 때는 항내에서 파선되는 일이 자주 일어났으므로 김정 목사가 몸소 돌을 지어 나르는 등 앞장서서 방파제와 선착장을 축조했다. 김목사는 이임에 앞서 과로로 이 포구에서 운명하였다. 부임하는 목민관이나 김정희, 최익현 등 유배인들도 이 포구로 들어온 사연 많은 역사의 현장이다.’

화북포구에서 생을 마친 김정 목사

경북 봉화군 출신인 김정(金政:1670-1737) 목사는 배움에 갈증을 느끼던 제주선인들을 위해 삼천서당을 세워 학문을 장려하고 삼사석을 정비했으며, 화북포구를 증축하던 중 화북진에서 사망했다

영조대왕은 전라, 충청, 경상도에 영을 내려 그의 시신이 그의 고향으로 갈 때까지 각도 역군들이 절도사의 예를 다해 영접하도록 관문(關文)을 내렸는데, 이 관문은 김정 목사 가문에 보관돼 있다. 제주 유림들이 장지까지 따라갔으며 그의 고향에는 제주에서 가져간 솔씨를 심어 자란 소나무 숲이 있다

2018년 노봉 김정 목사 유적 답사 시 필자는 우선 마을 입구에 심어져 있는 제주의 곰솔을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하기도 했다

화북포구 공사를 감독했던 제주 목사 김정을 기리는 비이다. 원래 이 비에는 ‘목사김공정봉공비’라고 쓰여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김정’ 두 글자만 흐릿하게 남아 있다.
화북포구 공사를 감독했던 제주 목사 김정을 기리는 비이다. 원래 이 비에는 ‘목사김공정봉공비’라고 쓰여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김정’ 두 글자만 흐릿하게 남아 있다.

김정 목사는 삼천서당 상량문에서 무리가 있으면 학교가 있어야 하고 집이 있으면 글방이 있어야 하는데, 천년을 두고 이루지 못했던 것을 이제 겨우 이루게 되었다.’라고 적을만큼 교육과 훈학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었다

절해고도 제주는 목민관이 어떤 인물인가에 따라 제주선인들의 삶도 달라졌을 것이다. 그의 문집에는 제주에서 지은 80여 수의 시가 수록돼 있다

김석익 선생이 1918년 편찬한 탐라기년에는 목사 김정이 삼천서당을 동성(東城) 안에 세우고 재생 늠료를 두어 범민으로서 준수한 자를 가르쳤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김정의 시=‘한라산 정상에 올라 : 묏부리 푸픈 하늘에 솟아 자로 잴 수 없네 /북두칠성, 견우성이 지척이네 /한 쌍의 쇠 피리 바위 틈에 울려 /바람이 메아리를 밀어 하늘에 가득하네 /산꼭대기에 고리처럼 병풍 바위 둘러 있고 /가운데 물 고인 맑은 못 한 개 옥으로 된 제단 /사슴 탄 신선은 어디로 갔는가 /하늘에다 각을 부니 물가에 구름이 내리네 /하늘은 바다에 떠 있고 바다는 하늘에 떠있으니 / 대기 가운데로 배 떠나 다니듯 /세속에 마가 낀 것 다 못 없애 절로 웃음 나와 /정신 놓듯 읊다가 신선께 하직인사하네

오래전 제주도에는 조류와 풍향에 따라 별도포와 조천포 그리고 광해가 제주에 처음 발을 디딘 어등포 등의 포구가 바다를 건너는 관문으로 이용됐다

당시에는 제주도와 본토를 연결하는 안전한 교통항은 조천포 하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정 목사가 화북포 축항공사를 추진해 방파제와 선착장을 마련하니, 또 하나의 안전한 교통항이 생기게 된 것이다

화북포구의 등대.
화북포구의 등대.

이 공사에 그는 도민의 부역을 배제하고, 번미(番米)를 내놓아 공사를 추진해 스스로 돌을 짊어져 날라 목사가 돌짐을 져 날랐다는 전설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돌짐을 져 날랐던 현장인 화북포에서 쓰러져 68세의 생애를 마감했야만 했다

그가 아끼고 다듬은 많은 문화유적들이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산지천의 조천석 바위를 지주암으로 정한 것을 비롯해 삼사석, 달관대, 광제교, 감액천, 판서정 등은 모두 그가 붙인 이름들이다

다음은 화북포구 남쪽에 설치한 김정 목사의 공덕비와 화북포를 처음 공사할 때 김정 목사가 작성한 고유문을 한글로 옮긴 내용이다

하늘은 만물을 덮고, 땅은 만물을 싣고, 바다는 만물을 건네어줍니다. () 임금의 기형과 우() 임금의 도끼, 황제(黃帝) 헌원軒轅)의 배처럼 재단해 이루시고 보필해 도우소서. 좌우간에 바람 불어 날아가고 험난해서 막히며 파도쳐서 흔들거리는 것은 기운이 그렇게 시킨 것이요, 이치가 그러한 것이며, 형세가 본디 그러한 것이리라. 진실로 후풍할 수 있고, 진실로 평안할 수 있고, 진실로 조심할 수 있다면 위기에 처해도 안전하고, 험난함을 당해도 편안하며, 요동침을 만나도 잔잔할 것입니다. ! 옛날 탁라(제주의 옛말)는 처음 탐진(耽津:강진의 옛 이름)으로 항해하였으므로 으로 바꾸었는데, 이때부터 그 뒤로 나라에서 벼슬을 내려 주()로 삼은 지 천여 년이 됩니다. 벼슬아치들이 왕래하고 공물 바치는 것이 끊이지 않으니, 무역을 했든 안 했든 왕령(王靈)의 충만함과 넓은 바다의 덕과 배를 타는 공입니다. 돌아보건대, 이 화북포구는 섬의 목구멍이면서 배에게는 요긴한 나루이나 포구의 암석이 들쑥날쑥 솟아있고, 큰 물결이 찧어대며 거센 바람이 격렬하게 부딪쳐서, 옛날에 쌓았던 석보(石堡)가 무너져 내려 남아 있지 않습니다. 움직이다가 엎어짐을 당해도 사람들이 노력해 수리하려고 아니하고, 오히려 하늘에 한탄하고 모두 바다에 원망했습니다. 옛날에 막았던 것을 복구하기로 생각하고 공장(工匠)들을 소집해 돌을 깨고 돌을 운반하면서, 삼가 희생과 술을 차리고 정성을 다해 말씀드리며 일에 앞서 고유(告由)하오니, 바람과 태양이 화창하고 따뜻하도록 거령(巨靈)께서 도와 순조롭게 하시고 조두(潮頭:조수가 드나드는 방파제)를 조금 안정시키시어 하루 이틀 층층이 쌓아 완성해 백세(百世)를 지탱할 수 있게 하소서. 배를 감출 수 있고 배를 띄울 수 있으며 배를 들여놓을 수 있는 것에 하늘이 이루지 않음이 없고 음덕이 돕지 않음이 없으며 신이 돕지 않음이 없나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