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 차오를 때면 그때를 꺼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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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서귀포시 표선면 초원의 집(下)
중산간의 한 시절 남기고 떠난 故 김영갑
감미로운 음악에 추모 마음 담아

바람과 구름과 햇살에 기대어  김영갑을 추억하다

제주 중산간의 한 시절을 남기고 떠난 사진작가 故 김영갑. 그는 한 때 ‘초원의 집에 머물렀다고 한다. 그가 머물던 자리에 핀 꽃들이 바람난장 식구들을 반겼다.
제주 중산간의 한 시절을 남기고 떠난 사진작가 故 김영갑. 그는 한 때 ‘초원의 집에 머물렀다고 한다. 그가 머물던 자리에 핀 꽃들이 바람난장 식구들을 반겼다.

여기 바람뿐이다. 억새는 흔들리고 오름은 물기 어린 표정으로 가득하다. 어딘가 축축하게 젖어 있는 슬픈 화면. 어느 늦가을 그의 렌즈에 비친 제주 중산간의 모습이다. 어떤 날은 보랏빛 주홍빛 노을을 머리에 이고 오름을 올랐나 보다. 깊고 눈부신 제주의 자연이 필름마다 아련하다.

초원의 집 박창언 대표가 바람난장 식구들을 맞이했다.(사진 써 달라고 합니다)
초원의 집 박창언 대표가 바람난장 식구들을 맞이했다.

이제 더는 볼 수 없는 풍경. 사라지고 잊혀져가는 제주 중산간의 한 시절을 남기고 떠난 사진작가 김영갑.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이 위치한 삼달리에 정착하기 전 그는 초원의 집(대표 박창언)’에 머물렀다고 한다. 하나뿐인 제자 박훈일 관장(두모악)과 인연을 맺은 것도 그 까닭에서다. 박훈일 관장의 부친의 배려로 함께 밥을 나누고 정을 나누며 낯선 섬 살이는 삶이 되어 갔다.

사랑은 각인되는 법이다. 어떤 형태로든 온전히 가슴 속에 새겨 넣어 그리움이 차오를 때면 꺼내봐야 하니까. 그에게 이 섬이 그러하지 않았을까. 흘러가는 구름도 휘몰아치는 바람도 늘 자기만의 시선과 사랑으로 포착했다. 스스로 바람개비가 되어 섬을 방랑하듯 그렇게 더듬어 오르며 황홀한 자연의 순간을, 서정을 붙잡았다. 김정희와 시놀이 팀의 낭송에 그리운 그 이름 꺼내 본다.

위미리 곤냇골엔섬소년이 살고 있다

한때는 시를 썼고

아직도 꿈꾼다는

그 소년

손자를 봐도

여전히 철부지다

마당과 옥상은 아예 마삭줄꽃 피워놨다

하루 서너 시간

물 주는 게 낙이라는

그 친구

바람개비로

곤냇골에 살고 있다

-오승철바람개비 친구전문

숙명일까. 그가 이 섬에 흘러든 까닭은. 운명일까. 우연히 들른 제주에서 마치 원죄처럼 그에게 찾아오고 만 루게릭병. 누워 지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사진을 향한 연정도, 지켜보던 이들의 안타까움도 커져만 갔다. 허망하게도 그는 30만 장의 필름만 남긴 채 영원한 휴식에 들어갔다. 20055월 찬란한 봄날 끝자락에.

황경수님이 추모의 마음을 유포니움 연주 ‘추억(조병화 시, 김성태 곡)’에 실어 보낸다. ‘잊어버리자고 잊어버리자고’ 라는 노랫말이 자꾸 떠올라 목이 메어온다.
황경수님이 추모의 마음을 유포니움 연주 ‘추억(조병화 시, 김성태 곡)’에 실어 보낸다. ‘잊어버리자고 잊어버리자고’ 라는 노랫말이 자꾸 떠올라 목이 메어온다.

황경수님이 추모의 마음을 유포니움 연주 추억(조병화 시, 김성태 곡)’에 실어 보낸다. ‘잊어버리자고 잊어버리자고라는 노랫말이 자꾸 떠올라 목이 메어온다. 잊으려 해도, 아무리 비벼도, 지워지지 않는 얼굴이 있다. ‘봄 끝물 그 이름’, 차마 죽지 못해꽃으로 피어난, ‘그리하여 그리하여다시 우리를 찾아와 꽃이 되어준 그 사람.

굳이 제 몸으로 꽃피워야 족속이랴

어느 봄날 눈 맞춘 외간 놈 불러들여

대낮에 끌어안는다

백화등을 내민다

이렇듯 누군가의 꽃이 되어 주는 일

그리하여 그리하여

사랑이 되어 주는 일

그런 일 하나만으로 꿩소리는 피어서

간간이 고백하듯 꿩소리는 피어서

나는 어느 줄로 예가지 와 성가시나

봄 끝물 그 이름으로

죽지 못해 꽃핀다

오승철 마삭줄꽃 불러들여전문

그새 제주의 자연은 많이도 변했다. 신비감 가득했던 원초적인 풍경은 오간데 없다. 빽빽한 전신주와 포장된 도로, 풍경 좋은 곳마다 들어선 펜션들. 변해가는 자연에 대한 상실감을 김영갑은 이렇게 표현했다.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져 더 이상 태고적 신비와 고요를 느낄 수 없게 된 그곳을 나는 이제 나의 기억속에서 지우려 합니다

사진을 통해 제주 자연에 순교했던 김영갑. 이관홍 님의 감미로운 플롯 연주(곡: 아일랜드의 여인)는 그에 대한 헌사이다.
사진을 통해 제주 자연에 순교했던 김영갑. 이관홍 님의 감미로운 플롯 연주(곡: 아일랜드의 여인)는 그에 대한 헌사이다.

기억을 지우겠다는 말. 잃어버린 자연의 슬픔과 비애를 견디지 못해 아예 송두리째 버리겠다는 탄식처럼 들린다. 아니, 어쩌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제주 자연을 기억 속에 봉인하겠다는 역설의 뜻일지도 모르겠다. 사진을 통해 제주 자연에 순교했던 김영갑. 이관홍님의 감미로운 플롯 연주(: 아일랜드의 여인)는 그에 대한 헌사이다.

김 선생은 흘러가는 구름도 휘몰아치는 바람도 늘 자기만의 시선과 사랑으로 포착했다. 바람난장 가족들은 우리의 곁을 떠난 한 예술인을 기억하며 그를 추억했다.
김 선생은 흘러가는 구름도 휘몰아치는 바람도 늘 자기만의 시선과 사랑으로 포착했다. 바람난장 가족들은 우리의 곁을 떠난 한 예술인을 기억하며 그를 추억했다.

오늘도 이 섬은 구름이고 햇살이고 바람이다. 변함없는 자연이 늘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기엔 세상의 속도는 빠르고 무심하다. 어쩌면, 외롭고 지친 그의 영혼은 피할 수 없는 우리시대의 우울한 자화상은 아니런지...

사회 정민자

그림 유창훈

유포니움 황경수

플롯 이관홍

소금 전병규

반주 현희순

시낭송 김정희와 시놀이 (김정희 이정아 이혜정 장순자)

영상 김성수

사진 허영숙

음향 최현철

글 김은정

*다음 바람난장은 613일 오전 10시 외도 월대천에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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