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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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허자, 광주대각사 주지·제주퇴허자명상원장

인간에게 잃어버림(紛失)과 잊어버림(忘却)은 각각 야누스의 두 얼굴처럼 양면성을 지닌다.

잃어버림은 물질을 분실한 것이요 잊어버림은 뭔가 정신적인 것을 망각한 것인데 전자든 후자든 모두 나 자신의 소홀함에서 빚어진 결과이다. 사람마다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잃어버려도 잊어버려도 속상할 때가 있다. 특히 귀중한 것을 잃었거나 소중한 것을 잊었을 때 찾아오는 상실감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 마음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나는 최근 3~4일 동안 몸살을 앓듯이 속앓이를 해왔다. 본래 꼼꼼한 성격이라 그럴 리가 없는데 농협과 우체국의 통장 9개를 모두 잃어버린 것이다. 광주대각사와 제주명상원의 두 집 살림을 챙기다보니 많지도 않은 돈이지만 어쩌다가 통장만 잔뜩 늘어났다. 사회복지시설 호산마을의 영향도 있었고 이제 살림살이도 줄어들어 통장도 줄이려던 참인데 그만 이런 일이 터지고 말았다.

항상 다른 이들의 고민거리 상담을 해주던 사람들은 막상 자신에게 난감한 일이 생기면 선 듯 누구에게 자문을 구하지 못하는 바보스런 면이 없지 않다. 내가 바로 그렇다. 그 누구에게도 입을 떼지 못하고 혼자서 장롱과 서랍, 책상과 이불장 심지어는 창고와 자동차 안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엄마 찾아 삼만리였다. 어디 그뿐인가? 광주 절에도 전화하고 가까운 농협과 우체국에도 수소문해 봤지만 허사였다. 결국 엄마 손을 놓친 아이처럼 허탈감에 빠져 한 손에는 기권이라는 황색 깃발과 또 다른 손에는 포기라는 빨간 깃발을 들어버렸다.

이런 지경에 이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일찌감치 마음을 접거나 가장 합리적인 생각으로 인근 파출소와 은행을 찾아가 분실신고를 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어디선가 습득한 사람이 내게 직접 전화를 걸어오거나 아니면 은행이나 우체국에서 어느 양심가가 주워 맡겼다고 하며 금방이라도 연락이 올 것 같다는 생각이 앞섰다. 나도 언젠가 돈 가방을 주워 지서(파출소)에 전달한 적도, 돈 지갑을 길에서 습득하여 파출소에 찾아가 맡긴 적도 없지 않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저래 3일이 불쑥 지났다. 끝내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뭔가 결단을 내려야 할 순간이 왔다. 114 안내를 통해 은행의 콜센터를 찾았고 통장의 계좌번호를 일일이 불러주었으며 일단 출금정지를 의뢰하였다. 그래도 뭔지 모르게 마음 한쪽에서 석연치 않은 통장의 신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며칠 후 삼양동 한라마을 작은도서관에서 어느 분이 시집출간기념으로 시낭송회가 있다고 하여 초대를 받았는데 그 시인에게 아호를 선물할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여느 때처럼 그분을 연상하면서 아호로 시당(詩塘)을 일필휘지하여 장롱 속에 있는 걸망에다 넣으려 하는 순간 ‘어허!’ 기적 같은 일이 발생하였다. 걸망 깊숙한 곳에서 뭔가 ‘응애!’하고 낮익은 감촉이 전해 왔다. 그것은 바로 다름이 아닌 내가 그렇게 찾던 통장 꾸러미가 들어 있지 않는가? 참으로 알다가 모를 일이다.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그 걸망 속을 몇 번이나 뒤졌는데 아니 보이더니 이제야 나타난다는 말인가. ‘둥그레 당실~둥그레 당실~너도 당실~나도 당실~신바람이 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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