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바다를 지키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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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화 수필가

어느덧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산과 들은 지난 해와 변한게 없는 듯한데 코로나라는 전염병이 전세계 인간들을 괴롭히고 경제가 아작이 났다. 젊은이들은 직장을 잃고 가게 문을 닫는 자영업자들도 눈에 띈다. 하루빨리 바이러스가 종식되어 정상적인 생활을 시작하기를 기약하며 차를 몰고 나섰다.

오랜만에 바다내음이 그리워 해안도로를 달리다 문득 눈에 띄는 건물 앞에 멈춰섰다. 세월이 얼마나 흘렀을까. 바닷가 언저리에 덩그러이 위치한 건물. 10여 년 전 이곳은 남편이 운영하던 식품 건조 공장이었다. 요즘이야 밤이면 해안도로가 불야성을 이루지만 당시 바닷가는 적막이 흐르고 파도 소리만이 창문을 흔들며 쓸쓸했다.

낮에 일하던 직원들이 모두 퇴근하면 남편 혼자 당직실을 지키고 있을 때가 많았다. 텅 빈 공장 안엔 여러 대의 기계만 남아 밤까지 열을 내곤 했다. 공장 한 켠엔 밭에서 갓 수학한 농산물들이 가득 쌓여 있었고, 지하 창고에는 건조 식품과 분말이 가득했다. 제품이 고가이다 보니 눅눅해지지나 않을까, 늘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당시 밤마다 공장 곁에서 밤을 지새우는 게 스트레스일 법도 하련만, 워낙 낚시를 좋아하는 남편이기에 나는 마음을 푹 놓고 있었다. 작업을 핑계 삼아 밤새 파도소리를 벗하고 마음껏 낚시를 하니 오히려 좋아하지 않을까. 그런데 왠걸, 장마가 유난히 길었던 어느해 추적추적 가랑비가 내리던 밤 남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바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렴쪄.”

남편은 차마 무섭다는 말은 못하고 바닷소리 탓만 한다.

좀 잠을 자보려고 해도 뒷머리가 뻐근허고, 내 몸이 아닌거 담다.”

순간 가슴이 덜커덩 내려 앉았다. 강인한 척하지만 속은 여린 남편이 흔들리는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얼른 동네 친구를 불러 남편이 있는 바닷가 공장으로 달려갔다. 건물 쪽으로 다가가니, 안개가 자욱하고 창문을 때리는 빗줄기 소리마저 유독 을씨년스러웠다. 야심한 밤에 올빼미는 또 왜 그리 구슬피 우는지. 영혼의 속삭임처럼 음험하게 들려왔다. 공포 영화 세트장 같은 공장을 매일 밤 지켰던 남편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웠을까. 집에서 기다리는 자식 셋을 생각하며 떠나지도 못했을 삶의 터전.

어서 나옵써. 따뜻한 집으로 가야지.”

그 후로 가을이 다가올 때까지 야간 작업을 멈췄다. 밤에 기계를 멈추면 수입이 확 줄어들어 남편이 걱정했지만, 그의 마음을 추스르는 게 먼저였다.

그래도 우리 부부에겐 젊음이 있었기에 삶의 속도를 늦출 수는 없었다. 낮이면 남편은 여전히 식품 건조 공장으로 출근했고, 농약 판매 소매점을 운영하고 있었기에 나는 나대로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새벽부터 가게로 몰려오는 농민들은 얼마나 질문이 많은지. 그들에게 답하기 위해 나는 매일 해충 관리 지침서를 꼼꼼히 읽고 기후에 따른 용법가 용량을 공부했다. 그래도 이해가 안 되면 짖궂게 따지듯 묻는 이들도 있었다. 그때는 그들이 힘들게만 느껴졌는데, 20여 년 세월이 지나니 그 이웃들과 함께 해서 그 세월을 건너왔구나 싶다.

장마비 쏟아지던 그날 밤 이후, 두어 달이 흘렀을까. 다행히도 달빛이 좋은 가을 밤에 기계는 맑을 소리를 내며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남편과 함께 다시 야간 작업을 시작하며 마주봤던 평온한 밤바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악착같이 살아가는 우리 부부를 포근히 감싸주는 뜻이었을까. 여름밤 삶의 뿌리를 흔들었던 무서운 파도가 잔잔하게 위로를 건네왔다.

해안가에 외롭게 서 있던 남편의 공장 건물이 지금은 멋진 게스트하우스로 변신했다. 그 옆으로는 팬션이며 카페가 즐비했고, 사람들의 발길도 잦다. 근처 카페에 앉아 옛 생각에 잠기려는데 한 잔의 아이스 커피에 두 개의 빨대를 꽂아 머리를 맞댄 젊은 커플이 눈에 띈다. 저들은 이곳이 그 옛날 물 속을 힘차게 헤치던 해녀들의 탈의장이었음을 알까. 바다는 그대로인데 모든게 너무나 많이 변했다. 치열하던 세월은 어느덧 사그라지고 그 시절의 소소한 행복만이 가슴에 남는다. 언젠가 코로가 19가 종식돼도 전염병은 그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오늘 나의 행복한 순간만이 추억으로 남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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