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쉬고, 위험하면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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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건, 제주특별자치도 사회복지협의회 사무국장

“말이 쉽지 3, 4일씩이나 어떻게 쉬어?” 동료직원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코로나19 생활 속 거리두기 지침’을 보며 불쑥 내뱉는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나보고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아 “꼭 코로나19 때문이 아니더라도 아프면 쉬는 것이 당연하지.”라고 응수했다. 그런데 그 말을 하고 나서도 마음이 썩 개운치 않았다. 분명 내 머릿속에선 ‘아프다고 무작정 쉬어서는 안 되겠지만’이라는 미처 말하지 못한 전제조건이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때 사무실에 ‘휴가는 실력이고 칼퇴근은 미덕이다’라는 문구를 크게 써 붙여 놓은 적이 있다. 사무실에 왔다가 글귀를 본 이들 중에는 사진까지 찍으며 긍정적으로 봐 주던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오히려 부정적으로 해석된다며 당장 떼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부터 실천하겠다는 다짐으로 써 놓은 것이었지만, 일에 치여 주말에도 나와야 하는 직원들 입장에선 실력도 없고 미덕까지 없는 사람으로 몰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불편했을 텐데 거기까지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솔직히 직원이 연가신청서를 내미는 순간에는 이 직원에게 밀린 업무는 없는지, 업무 일정에 차질은 없는지 등등 결재에 이르기까지 정신적으로 험난한 여정을 거치게 되는 게 사실이다. 그런 기운을 전달 받았는지 ‘연가 사용은 권리’라고 늘 주장하는 내 얘기에 고운 시선을 보내주는 직원이 없다. 꼰대 소리를 듣지 않으려 나름 노력해 보지만 잠재의식 속 내재된 투철한 꼰대정신은 노력으로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라떼’를 즐기는 선배들에게 “너만 아프냐? 난 더 아프다”거나 “누가 마음대로 아프라고 했냐?”라는 핀잔을 들으며 끙끙대는 몸으로 자리를 지켜야 했던 다소 무식하고 무모했던 시절, 나 자신의 미련함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만큼이나 꼰대정신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가 원튼 원치 않든 쫓기듯 적응해야 할 변화가 있다면, 우리가 스스로 선택해야 할 변화도 있다. ‘일하는 환경의 변화’가 후자의 경우 중 하나일 것이다. 예전 같으면 대기업에서나 가능한 일로 여겨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근무시간과 장소의 탄력적 운용, 종이문서를 최소화하는 온라인 중심 업무 방식으로의 전환 등과 같은 과감한(?) 변화도 이번 기회에 선택해 볼 일이다. 업무 방식의 변화 못지않게 먼저 나서서 선택해야 할 변화는 ‘아프면 당연히 쉬고, 위험하면 당연히 멈출 수 있는’ 사람 우선의 일하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이미 우리나라는 일터에서 숨지는 노동자가 하루 평균 2.3명꼴(2019년 기준)로 다른 나라보다 산재 사망률이 높은 실정이다. 일찌감치 우리가 아프면 쉬고, 위험하면 멈출 수 있는 환경으로 일터를 변화시켜야 했던 이유다.

코로나19보다 아주 오래전부터 일터에서 나 자신과 가족을 위협하며 도사리고 있는 게 ‘산재 바이러스’다. 그저 나와 내 일터에서는 상관없는 일이기를 기대하며 외면해 왔을 뿐이다. 그 외면은 오늘도 끝내 퇴근하지 못하는 2.3명의 노동자를 만들고 있다.

온 국민이 생활 속 거리두기로 코로나19와 맞서고 있듯 온 일터에서 일하는 환경의 변화로 산재 바이러스와 맞서 볼 좋은 기회다. 내친김에 ‘못 말리는 꼰대’소리 들을 각오로 다시 크게 써서 사무실 잘 보이는 곳에 붙여야겠다. “아프면 쉬고, 위험하면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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