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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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 명상가

종교적인 이유도 있지만 점차 간소화되어가고 있는 것이 장례이다. 대부분 죽은 이와 상관없이 편하게 하자는 의견 일치로 화장을 선호한다. 지금은 구경조차 힘들지만 전통방식의 구성진 가락은 엄숙했다. 과거에도 높은 벼슬을 했거나 권세가 있었다면 나름 식견 있는 지관의 힘을 빌려 장례를 치렀다.

윤달인 경우에는 귀신도 간섭하지 않는다 하여 평소 꺼리던 수의 짓기이장등이 많이 이루어졌다.

남다른 야망이 있는 분의 부탁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선산을 정리해서 가족 수목장을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새벽에 서둘러 도착하니 전부 합장이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가지런히 정리가 잘 돼 있었다

맨 윗대부터 간단한 예를 갖추고 묘를 파헤치는데 불과 한 뼘쯤 사이에 놓여있는 두 관 속의 모습은 눈을 의심하게 했다.

증고조 할머니 유골은 겨우 한 조각만큼의 뼈만 남았는데 증고조 할아버지의 관은 발목이 빠질 정도로 물이 가득 차 있었다. 단단히 옻칠을 하지 않았으면 관의 형태도 없을 정도였다. 유골은 부패되지 않은 상태 그대로였다.

가족들은 넋이 나간 상태로 눈물까지 흘렸다. 심지어 자기들끼리 고성이 오고 갔다. 하지만 이제 와서 누구 탓을 할 수도 없었다

잠시 진정을 시키고 이 집에 대가 끊어졌는데 맞냐고 물으니 4대조와 3대조가 아들이 없어 육촌 팔촌 형제들의 아들을 자식으로 입양했단다. 딸은 6~7명씩 낳았고 심지어 첩까지 들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단다.

그러한 현상은 다른 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반면에 여자 쪽의 묘는 더 없는 명당이었다. 무슨 억한 심정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면 선무당의 어설픈 풍수 솜씨였다

할아버지 때에는 그 많던 가산을 탕진하고 겨우 명맥만 유지하다가 이제야 생활의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는 대답도 들을 수 있었다. 외가 쪽 친척은 말은 없었지만 이런  장면을 보고  내심 안도의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사람이 죽으면 육신이 남겨지는데 흙으로 돌아가는 시간은 땅의 기운에 따라 70년 정도이고 50년이면  최상의 장소이다.

겉치레 인사로 얼굴만 비추기보다는 가족의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분명한 것은 제사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연결고리이고 결혼보다도 우선순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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