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해병병장 임동원의 딸, 임선영입니다
저는 해병병장 임동원의 딸, 임선영입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임선영

저의 아버지는 해병대 4기로 6·25전쟁에 참전해서 강원도 양구 도솔산지구 전투에서 전사하신 임동원 병장입니다. 때로는 원망스럽고 때로는 사무치게 그리웠던 아버지의 이름을 자랑스러운 영웅의 이름으로 되새겼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1951년, 제주도 중문에서 태어나 할머니 손에 자랐습니다. 주위에서 부모 없는 아이라고 놀릴 때면 온종일 울면서 밤을 새우기도 했습니다. 할머니께선 “아버지는 적과 맞서 싸우다 전사했다.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울지 말아라”라며 다독여 주셨지만, 저에게는 그저 “왜 나 혼자 남겨두고 돌아가셨을까?”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세월이 지나 저도 한 가정의 평범한 주부가 됐고, 바쁜 일상을 보내다 보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잊혀 갔습니다. 그러던 2002년 어느 날, TV를 통해 ‘전사자 가족 찾기 프로그램’을 우연히 본 후, 어쩌면 아버지가 어디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신청을 하게 됐습니다.

며칠 후 국방부로부터, “아버지는 무연고 전사자로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다”는 전화를 받고 남편과 아들 셋과 함께 아버지를 찾아뵈었습니다. 묘비에 적힌 아버지의 이름을 보자마자 감정이 벅차올랐고, 연신 절을 올리며 늦게 찾아뵈어 죄송하다고 용서를 빌고 또 빌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태어난 지 52년 만에야 아버지를 뵐 수 있었습니다.

그 후 해병대사령부에 문의한 결과, 아버지는 1951년 6월 6일 도솔산 전투에서 전사하셨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고, 해병대 3·4기 전우회를 통해서는 인천상륙작전과 서울수복작전 등에 참전하셨고 돌아가신 그날까지 누구보다도 용감하게 싸우다 전사하셨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는 원망스럽기만 하고 사무치게 그립기만 했던 사람에서 그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운 우리 가족의 영웅으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 지난 6월 아버지 제사를 모신 며칠 후 해병대 9여단에서 전사자 호명식을 진행한다며 참석 여부를 묻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는 생각에 당연히 참석한다고 했고, 행사 전날까지 가슴이 들뜨고 벅찼습니다. 우리 아버지 ‘임동원’이라는 자랑스러운 이름을 언제 큰 소리로 불러보겠습니까?

그렇게 6월 25일이 됐습니다. 하늘도 전사자들을 추모했는지 하염없이 비가 내렸고, 저 또한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울었고, 자랑스러움으로 울었고, 고마움으로 울었습니다.

아버지와 전사자들을 잊지 않고 2114명 한 분 한 분의 이름을 기억하고 끝까지 불러준 해병대 장병들에게 고마웠고, 함께 싸우다 전사한 전우들의 이름을 목 놓아 부르는 노병들의 모습에서 아버지를 볼 수 있어 고마웠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조국을 위해 헌신하신 이분들을 끝까지 잊지 않고 나라의 영웅으로 모시며, 그분들의 유해와 영웅담을 모든 유가족에게 돌려드릴 수 있는 그날이 빨리 오기를 소망해 봅니다.

나의 아버지 임동원 병장! 저는 당신의 딸 임선영입니다. 항상 잊지 않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해병병장 2020-07-09 09:24:03
6.25전사자 호명식에 참석했던 예비역해병 병장입니다.
아버지를 부르시는 그대의 모습에서 대한민국이 건재함을 느꼈습니다.
긴 세월동안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호명식으로, 그나마 위안이 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해병대 행사에서 뵙겠습니다.

제주도 해병 2020-07-09 06:32:29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몸을 바치신 거룩한 희생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