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 조문
외상 조문
  • 제주일보
  • 승인 2020.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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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익 칼럼니스트

때로는 예기치 않은 실수로 난처할 때가 있다. 조문을 하려면 부조봉투를 제대로 챙겼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아주 특이하지만 경조사봉투를 제대로 챙기지 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다.

제목부터 ‘외상 조문’으로 하고자 하는 얘기를 달았으니, 충분하리라. 경사보다 조문은 더욱 그렇다.

집에 승용차가 한 대뿐이라서 평소엔 내가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벌써 10년 넘게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이 불편하다, 요번처럼 혼자 외상 조문하게 될 때는 또 다른 불편이 따른다.

상에 부조를 하려고 부조를 찾았지만, 갖고 가지 못한 부조가 있을 리가 없다. 위아래 네 개의 포켓을 찾아보았지만 있을 리가 있겠는가. 어떻게 그렇게 좋은 방법이 떠올랐는지 “아까 단체 부조를 할 때 같이 했다”고 해서 절을 할 자격을 얻었다. 어떻게 당황하지 않고 소주 1병 음복에, 국수 두 그릇이었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국수는 많이 좋아한다. 조문도 못하고 외상 조문으로 음복만 한 조문객은 혼자일 터였다. 현금이 있어야 조문을 할 것이 아닌가.

집에 와서 살펴보니 부조봉투는 컴퓨터의 프린터 위에 얌전히 있었다.

무슨 일에 서두르지 않는 내가 부조봉투를 빠뜨리는 큰 실수를 했다. 웬만하면 동행인이 있어야지 혼자 서두르다가 이번처럼 외상 조문을 하게 됐다. 외상 조문은 나중에 계좌입금으로 해결했다. 상주였던 그는 웃으면서 매우 고마워했다. 조문을 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사람도 많겠지.

외상 조문을 하지 않았다면 누가 조문을 가든 말든 했을 텐데, 특별히 정성으로 잊지 않을 것이다. 이곳 문인협회 회원이 100여 명이지만 경조사를 모두 돌아보기는 힘들다. 이제 힘들어져서 일부만 서로 친교가 있을 때 돌아다본다. 주거니 받거니 주고받으면 그만이다. 이번 상주인 시인도 평소 가깝게 지내서 혼자서라도 조문을 한 것이다. 옛날에는 웬만하면 바로 조문으로 처리를 했지만, 갈수록 사정이 복잡해지니 계좌입금도 괜찮은 방법이다. 조문을 갔을 때 한눈에 봐도 평소 상주가 어떻게 생활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큰아들, 작은 아들 등으로 상주가 서 있을 때 조문객이 한바탕 평가(?)로 점수를 매긴다. 나쁜 평가가 아니라 적당한 평가다.

아무개 상주 뒤에 조름(뒤)에 조문객이 많이 왔다고 평가하는 것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조문객이 상주의 평가를 좋아하는 건 음복을 하면서부터다. 육지부에서는 어쩐지 모르지만, 제주에서는 특히 그런 것 같다. 오는 쉬운 정이 있어야 가는 정이 있어야 하리라. 오는 정을 쌓아두면 가는 정도 푸짐하리라.

계좌입금으로 받은 상부조가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아직은 얼마 크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부득불 커져 가리라. 계좌입금의 문제가 어떻게 부조금을 집어넣어 주는 것이 문제다. 어떤 방법으로든 부조금을 넣어주면 됐다. 그것이 어려우면 이유가 안 됐다.

옛날의 우리 할아버지들의 잔술도 한동안 오랫동안 이어졌다. 가끔은 규칙을 어기고 잔술을 어기고 팔지 않았던가. 할아버지들은 잔술을 팔면서 용돈을 삼았다. 그때도 술 한 잔이 그립고, 사람도 그리워서 잔술을 팔던 할아버지가 그리웠다. 그 술 한 잔이 살아가는 맛이었고, 오늘처럼 숨을 트던 일이 아니었던가. 잔술을 팔던 할아버지의 고향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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