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명랑 이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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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MD헬스케어 고문/논설위원

서울 성북동은 도로 하나를 두고 명확히 두 부분으로 나뉜다. 성곽 바로 밑에 있는 마을은 소위 달동네로 가파른 언덕을 따라 허술한 집이 다닥다닥하게 붙어 있다. 1994년도에 방영된 ‘서울의 달’ 드라마의 배경과 비슷한 곳으로서 드문드문 작은 텃밭도 있다. 반면에 길상사가 있는 쪽은 이름부터 ‘꿩의 바다’, ‘학의 바다’ 라고 고상하게 불리며 여러 나라의 대사관저가 있고 과거 재벌 1세들의 저택이 즐비한 최고급 주택 단지이다. 김광섭의 시 ‘성북동 비둘기’에서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며,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고 서운했던 곳이 이쪽이었을 것이다. 성북동 서울 성곽 쪽에는 오래된 가게들이 많고 이들 가게 주인은 성곽 쪽에 거주하는 경우가 적지 많다. 이들은 처음에는 생업을 위해 시작하였으나 나이 들어서는 돈을 버는 것보다 천직으로 생각하며 계속 하시는 분들도 꽤 있다.

요즘 중장년 남성들에게 있어서 이발하고 희끗희끗한 머리를 염색할 곳을 찾기가 마땅치 않다. 길 가다가 쉽게 눈에 띄던 그 많던 이발관들은 거의 다 사라졌고 동네 목욕탕도 요즘에는 찾기 힘들어 거기 있는 이발소를 이용하기도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헤어 숍을 찾아갈 수밖에 없는데, 아직도 익숙하지는 않다.

성북동 서울 성곽 쪽에 이곳에서만 영업한 지 60년 된 ‘명랑 이발관’이 있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가끔씩 지나칠 때 보이는 청색 테이프로 대충 붙여진 이발사 할머니 사진을 보면서 한 번쯤 가 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망설여 왔다. 보통의 경우라면 거동하기도 힘든 86세의 할머니에게 머리를 맡기기가 미안하기도 하고 또 왠지 어색하다는 느낌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주말, 지인의 결혼식이 있어 이발을 하려는데, 불현듯 할머니 이발사가 운영하는 ‘명랑 이발관’이 떠올라 가게 되었다.

의자는 하나밖에 없었다. 이발사 할머니는 매우 능숙한 솜씨로 가위질을 시작했고 오랜만에 잘 간 가위에서 나는 사각사각 하는 소리가 기분 좋게 들렸다. 그 후로는 영화 ‘시네마 천국’을 보는 듯한 광경이 펼쳐졌다. 빛바랜 라디오, 잘 정돈된 이발 도구, 닳고 닳은 물바가지 등이 모두 영화의 소품 같다는 느낌이었다. 얼마만인지 기억도 없는 면도는 ‘구름에 달 가듯이’ 부드럽고 거침이 없었다. 살살 했는데도 감겨준 머리는 시원했다. 장인의 품격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간단한 안마를 하며 풀어 놓는 86세 할머니의 삶의 무늬는 묵직하고 진솔하여 가슴을 울렸다, 19세부터 시작하여 그동안 일했던 동네만 해도 20여 곳이 넘었는데 한때는 정주영, 김두한 씨가 단골이었고 할아버지가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20여 년 동안 하루 3~4 시간밖에 못 자며 간병하셨다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악착같이 돈을 버는 사람보다 나랏돈을 잘 쓰는 사람이 먼저인 느낌이 들고 있다. 그 돈이 어느 호주머니로부터 나왔는지는 별 관심이 없다. 돈을 잘 버는 노하우보다 나랏돈을 놓치지 않고 잘 받는 팁이 주요 화제이기도 하다. 명랑 할머니는 집에 가만히 계서도 되는 나이가 훨씬 지나셨다. 나라에서 쥐어주는 돈보다 스스로 이발 가위로 버는 돈이 가치가 훨씬 높다고 생각하기에 오늘도 일하신다. 이런 분들의 수고로움이 합쳐져서 오늘날 OECD 국가인 대한민국이 되지 않았을까?

진솔한 삶의 향기는 늘 우리를 매료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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