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공 최규일 선생의 절·개·론)시조 속 살아있는 선현의 곧은 지조 노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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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칠군자의 군자고절
매화·난초·국화·대나무·소나무
잣나무·군자란 고귀한 자태 뽐내
원천석, ‘대나무 절의가’로
시류 영합하는 무리에 경종
이색, 매화에 우국지사 지조 담아
윤선도, 바위와 소나무 등 통해
변치 않는 충신열사의 기개 비유
고결한 자태 자랑하는 제주 한란

조지훈 선생의 지조론(志操論)’(1960)과 이희승 스승의 지조(志操)’(1966)를 현 시대에 맞춰 천공 최규일의 절개론(節槪論)’으로 펼쳐본다. 이 글은 성군과 명장, 충신, 지사, 열녀, 여러 스승의 생애와 발자취를 찾아 시리즈로 싣는다.

글쓴이는 제주대학교 교수와 국립국어원 부장, 독일 본(Bonn)대학교 객원교수, 한양대학교 교류교수를 역임했다. 지금은 제주대학교 명예교수다. <편집자 주>

 

 

 

대나무는 절개의 으뜸이다. 대나무의 곧고 단단함과 텅 빈 속은 청렴과 절개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사진=제주일보 자료사진)

새벽 여명에 백발도사께서 붓끝, 혀끝, 칼끝을 조심하라면서, 나라를 위해 절개와 지조를 지켜 사람답게 명예롭게 살다 가라.”하셨다. 마침 집에 빨간 군자란이 피어 군자의 기품을 뽐내니, 잊혀져가는 고시조를 읊으며 먼저 칠군자(七君子)’군자고절(君子高節)’을 피워 보리다.

() 눈마저 휘어진 대를 뉘라서 굽다던고/구불 절이면 눈 속에 푸르로랴/아마도 세한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원천석 청구영언’)

대나무의 세한고절(歲寒孤節)을 빌어 망해가는 고려를 지키려한 운곡 원천석(1330~?)의 절의가(絶義歌)이다. 초장의 은 새 왕조에 협력을 강요하는 압력. ‘휘어진은 그 속에서 견디는 고충을 드러냈다.

중장은 이미 대세가 기울어 맞서지는 못하나마 절개를 지키려는 정신을, 종장은 어떠한 시련에도 꺾이지 않는 굳은 절개를 형상화했다.

고려 수절신(守節臣)으로 추앙받는 원천석은 고려가 망하고 이성계 일파가 정권을 쥐자 벼슬을 내놓고, 강원도 치악산에 들어가 농사를 지으며 살다간 사람이다. 그는 일찍이 가르친 바 있는 이방원이 조선 건국 후 태종이 되자 사람을 보내어 출사(出仕)를 권하였으나 응하지 않았다.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는 운곡의 곧은 절의는 시류에 영합하는 무리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 백설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흐예라/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석양에 홀로 서서 갈 곳 몰라 하노라.(이색 해동가요’)

백설은 고려 유신(遺臣), ‘구름은 신흥 세력인 이성계 일파를, ‘매화는 우국지사의 지조를, ‘석양은 기울어져 가는 고려 국운을 비유한다. 우국충정(憂國衷情)이 주제다. 고려의 유신으로 기울어 가는 나라를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우의적으로 잘 나타난다.

목은 이색(1328~1396)은 고려 말기의 문신이자 정치가이며, 성리학을 개혁의 지향점으로 삼았다. 그는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더불어 고려 삼은(三隱)으로 불린다. 조선 개국 후 태조 이성계는 그의 재능을 아껴 예를 다하여 출사를 종용하였으나 끝내 고사했다.

()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곧기는 뉘시기며 속은 어이 비었는다/저렇고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윤선도 오우가 제5)

고산 윤선도(1587~1671)의 오우가 중 대()를 읊은 시조다. 초장은 대나무의 속성, 중장은 대나무의 곧음, 종장은 대나무의 절개를 기렸다.

대나무가 강한 것은 마디()’가 있기 때문이다. 대는 수덕(修德), 입신(立身), 체도(體道), 입지(立志) 4가지 속성을 지닌다.

그런 뜻에서 조상들은 대나무를 심어 가솔들의 단결과 번창을 염원했다. 대나무, 소나무, 매화를 세한삼우(歲寒三友)’로 부른다. 그 중에서도 대나무는 절개의 으뜸이다. 대나무의 곧고 단단함과 텅 빈 속은 청렴과 절개의 상징으로 여긴다.

() 빙자옥질(氷姿玉質)이여 눈 속의 네로구나/가만히 향기 노아 황혼월을 기약하니/아마도 아치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안민영 매화사’)

이 시조는 안민영(1816~?)매화사’ 8수 중 제3수로, 일명 영매가이다. 혹독한 추운 겨울에 피는 매화의 으뜸인 납월홍매(臘月紅梅)의 아치고절과 빙자옥질이 더욱 맑고 고매하다.

() 빼어난 가는 잎 새 굳은 듯 보드랍고/자줏빛 굵은 대공 하얀 꽃이 벌고/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본디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하여/정한 모래 틈에 뿌리를 서려 두고/미진도 가까이 않고 우로 받아 사느니라.(이병기 난초’)

가람 이병기(1891~1968)난초란 시조이다. 난초의 고결한 외모와 세속을 초월한 본성의 아름다움을 신비롭게 형상화했다. 난초를 의인화하여 청신한 외모와 고결한 내적 품성을 예찬했다. 이는 고결하게 살고자 하는 소망뿐 아니라 현대 문명 속에서 방황하는 현대인이 지향해야 할 삶의 자세를 일깨워 준다. 깊은 애정과 예리한 통찰력으로 난초를 묘사했다.

난초 중에서도 제주 한란은 더욱 빼어나다. 고결한 자태와 향취가 빼어난 한란은 인품을 갖춘 군자에 비유된다. 청아하고 고결하게 살아낼 수 있는 처세란 뭘까? 절개를 지키며 속세에 타협하지 않고 사는 고고한 제주 한란을 더더욱 좋아하게 된다. 기개 높은 내 집의 제주한란을 보면 그를 즐겨 기리지 않을 수 없다.

()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춘풍 다 지내고/낙목한천에 네 홀로 피었는가/아마도 오상고절(傲霜孤節)은 너뿐인가 하노라.(이정보 청구영언’)

한식 비갠 날에 국화움이 반가왜라/꽃도 보려니와 일일신 더 죠홰라/풍상이 섯거치면 군자절(君子節)을 픠온다. (김수장 청구영언’)

꽃을 보는 것도 좋지만, 매일매일 새로워지는 게 더 좋아라. 늦가을이 되면 국화는 군자의 절개를 꽃피운다. 국화야 너는 어찌 따뜻한 봄날을 다 보내고 나뭇잎 다 떨어진 추운 계절에 너 홀로 피었느냐. 서릿발 내리는 데도 피어나는 국화의 오상고절을 기린 시조다. 김수장(1690~?)과 이정보(1693~1766)는 조선 후기의 가객이다.

() . 꽃은 무슨 일로 피면서 쉬이 지고/풀은 어이 하여 푸르는듯 누르나니/아마도 변치 아닐 손 바위뿐인가 하노라. (윤선도 오우가3)

. 더우면 꽃 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솔아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느니/구천의 뿌리 곧은 줄을 글로 하여 아노라.(윤선도 오우가 제4)

고산 윤선도가 두고두고 언제나 변하지 않는 바위와 소나무의 절개를 읊은 시조다. 소나무의 푸름에서 꿋꿋한 지조와 절개를 느끼고, 소나무는 역경에서도 불변하는 충신열사의 상징으로 여긴다. 겨울에도 푸름을 잃지 않고 어떤 상황에도 한결같은 고매함을 지니는 소나무, 대나무, 매화 셋을 세한삼우(歲寒三友)라 부르고,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매란국죽 사군자(四君子)로 일컫는다.

이 사군자에 소나무를 더한 매란국죽송을 오군자, 여기에 잣나무와 군자란(君子蘭)을 또 더하여 칠군자(七君子)’라 불러, ‘매란국죽송죽군(梅蘭菊竹松柏君)’을 일곱 벗으로 삼아, 나는 칠군자의 군자고절(君子高節)을 즐겨 기리며 산다.

옛날 아프리카에 한 추장이 살았다. 그는 용맹할 뿐 아니라 지혜까지 겸비해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 받았다. 어느 날 먼 곳의 식인종이 마을을 습격해왔는데 추장은 용사들을 데리고 사냥을 나간 터라 마을을 지키던 젊은이들이 용감히 싸웠으나 목숨을 잃고 참패하고 말았다. 식인종은 그 마을 여자들을 끌고 멀리 가버렸다. 늦게야 돌아온 추장은 분개하며 식인종들의 뒤를 쫒아가 식인종들이 사는 곳에 도착했다.

식인종들은 나무 위에 집을 짓고 사는 수상족이므로, 젖은 나무를 이용해 식인종들을 연기로 질식시켜 나무에서 떨어져 죽거나 도망가게 했다. 도망가던 식인종 중 하나가 쏜 독화살에 애석하게도 추장이 맞아 죽고 말았다. 그 후 추장의 무덤에 꽃 한 송이가 피었는데 그 꽃이 군자란이다. 마침 내 집에 붉게 핀 군자란도 고귀한 자태를 뽐내니 칠군자의 군자고절을 상기시켜 준다. 그 고매하고 거룩한 칠군자의 뜻을 살려 천공의 절개를 세워볼까 하노라.

슬기로운 사람은 세상을 타고 가고,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에 끌려간다. 지금 이 나라에 절개와 지조가 있는지 없는지? 없다면 나라를 위한 절개를 지키기 위해 나팔수와 파수꾼 노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 길을 찾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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