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예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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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현 수필가

월요일 아침마다 배달되는 글이 있다. 도착을 알리는 알림음으로 하루를 연다. 오늘은 ‘‘유예가 밥 먹듯 이뤄지는 한국사회란 글제로 아침 시간 바삐 달려온 글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한국 사회에서는 그 시기(나이)에 맞게 치러야 하는 고민이나 갈등, 혹은 경험들 대부분을 유예하며 산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문득 내 얘기 같단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유예란 말의 유()는 원숭이처럼 생겼고, ()는 코끼리처럼 생겼는데 둘 다 의심도 많고, 겁 또한 어찌나 많은지 유()는 작은 소리 하나에도 놀라 나무 위로 기어오른다고 한다. 겁에 질린 나머지 아무 소리 없어도 내려오지 못한 채, 매달려 있거나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기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 또한 앞으로 한 걸음도 나서지 못하고 슬슬 눈치만 살피느라 어떤 행동도 못 한다고 한다. 유예(猶豫)는 이렇게 유와 예를 합친 말로, 그들이 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성질 급한 사람은 그야말로 복장 터질 지경이라는 것이다

나 역시 이참에 뭔가를 해 볼까 하다 막상 결정하려면 꼭 이 시점에서? 혹은 이 상황에서 면피하려는 모양새로 비치지 않을까?’ 하며 자신을 넘어 가당찮게 타인의 사고영역까지 걱정하다 결국 다음에란 말로 미룰 때가 더러 있다.

유예하는 것들, 돌이켜 보면 그게 정신적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그때, 딱 그 시점에서 행동으로 옮겼어야 했던 것들이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과 그때의 감정을 이유도 안 되는 이유로, 미룬 값을 후회와 아쉬움이란 말로 사는 내내 빚진 것처럼 살기도 한다.

이렇듯 미루다 보면 그날이 그날인 것 같지만, 어제의 바람이 오늘 그 바람이 아니듯, 오늘 햇살 또한 내일의 그 햇살일 수 없다. 유예시킨 탓에 더 큰 노력과 시간이 담보되기도 하고, 어느 시점에선 아예 그 일을 해야 할 명분마저 사라져 난감함도 경험한다.

몇 해 전, 가까운 지인에게 뭔가 도움이 되었으면 했던 적이 있다. 생각일 뿐 어떤 행동을 취하기엔 가진 게 적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나중에 해야지 미뤘었다. 어느 날 가족들과 식사하다 말끝에 그 이야기를 했다. 말을 들은 아들 녀석이 무엇이든지 하고 싶을 때 해야 가장 후회가 적다며 말을 잇더니 나중엔 주고 싶어도 상대방 상황이 나아져 줄 이유가 없어질 수도 있고, 지금보다 내 상황이 더 안 좋아져 내킬 때 하는 게 최상이다. 베푼다는 의미이면 더욱 그렇다.’고 시원하면서 뼈 있는 말이 오갔던 기억이 있다

생각을 유예하고 행동이 유예됨으로써 우리는 삶에서 얼마나 많은 부분들을 잊거나 접어둔 채 아쉬워하며 사는 걸까. 인터넷에 떠도는 말에, 세상에는 세 가지 중요한 이 있다고 한다물질을 대표하는 황금과, 음식을 할 때 없어서는 안 되는 소금그리고 시간을 상징하는 지금이라 한다.

이 세 가지 중에 황금과 소금보다 지금이라는 시간에 대해서는 너그럽게도 다음이란 말로 유예하면서도 별 불편 못 느끼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해야 할 일이면 지금이 가장 적기라는 말이 있다. 일이나 생각에 대한 머뭇거림이라면 지금 이 순간이 그 일을 행하는 가장 유효적절한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유예하는 삶, 우리가 살면서 흔히 보는 누군가의 모습, 혹은 너무 익숙해져 잘 모르는 내 모습은 아닌지 자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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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슨70 2020-08-03 19:40:41
<유예>고급진 단어를 수려하게 풀어내는 솜씨가 멋스럽습니다^^ 언제나 좋은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