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응답하라 1988’ 마지막 회에서 덕선이네 가족은 서울 쌍문동과 작별하고 판교로 이사를 간다. 이삿짐센터 직원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 농사지으러 가느냐”고 묻는다. 20년 전 경기도 성남시 판교는 허허발판의 농촌 마을이었다.
지금은 첨단 정보통신기술(IT)을 주도하며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판교 테크노밸리’가 조성됐다. 이곳의 입주 기업은 1309개에 이른다.
네이버, 카카오, 한글과컴퓨터, NC소프트, 네오위즈, 넥슨, 안랩 등 국내 IT 대표 기업이 들어섰다. 고급 인력이 몰리고 일자리 질이 높다 보니 판교 신도시 집값은 강남을 넘어섰다.
2012년 다음커뮤니케이션(다음) 본사가 제주로 이전했다. 당시 제주특별자치도는 국비와 지방비 감면 혜택을 포함한 입지 보조금 68억9300만원, 설비투자 보조금 33억7700만원, 진입로 개설비 3억3000만원 등 106억원을 지원했다.
제주시 영평동 첨단과학기술단지 내 12만5600㎡(3만8000평)를 분양해주는 파격적인 혜택도 따랐다.
수도권 기업 제주 이전 1호인 다음은 첨단과기단지에 스페이스닷원(Space.1)에 이어 스페이스닷투(Space.2)를 건립, 큰 그림을 완성했다. 서울 테헤란밸리에 머물던 인재들이 제주에 왔다.
자회사인 다음서비스가 제주에 설립되면서 직원 397명 중 378명(95%)이 도민으로 채용됐다.
다음은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를 주도, 제주판 실리콘밸리가 들어설 수 있는 자양분도 제공했다.
국내 메신저업계 1위, 포털 2위인 다음카카오는 합병 1주년을 맞아 2015년 회사명을 ‘카카오’로 변경했다. 첨단과기단지 본사 사옥과 입구의 돌하르방이 들고 있는 로고는 ‘카카오’로 바뀌었다.
그해 카카오는 판교에 사옥을 마련했다. 본사는 제주에 있지만, 카카오 판교오피스에 약 700명, 서울 한남오피스에 약 1200명의 임직원이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한 언론매체가 카카오가 제주에서 대다수 인력을 철수한다고 보도하자, 본사 이전 계획과 인력 유출은 없다는 해명자료가 나왔다.
현재 판교역 인근에는 2022년 입주를 목표로 ‘알파돔시티’ 프로젝트 개발 사업이 진행 중이다. 이곳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IT기업인 카카오와 네이버, 엔씨소프트가 입주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4월 ‘카카오 한곳에 모인다…판교 신축 건물 통임차’라는 제목하에 기사가 쏟아졌다.
카카오는 제주의 인력 유출과 본사 이전은 없다고 누차 해명했지만, IT업계에서는 “결혼은 제주에서 하고, 신혼집은 판교에 마련했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지난해 여름 중국 최남단 섬인 하이난(海南)을 방문했다. 하이난과 제주도는 과거 유배지이자 변방의 섬이었다.
하지만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 이후 하이난은 상전벽해의 변화가 있었다. 하이난 첨단산업단지에는 5세대 이동통신(5G)과 인공지능(AI), 로봇, 드론, 사물인터넷(IoT) 플랫폼 등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 갈 신기술 개발이 한창이다.
그 배경에는 글로벌 기업인 샤오미(Xiaomi)와 화웨이(Huawei), 텐센트(Tencent), 바이두(Baidu)의 연구소와 자회사가 하이난에 둥지를 틀었기 때문이다.
사람과 상품, 자본이 자유롭게 올 수 있다는 제주국제자유도시에서 거꾸로 고급 인력과 외국자본, 상품(IT기술)이 떠나고 있다.
제주는 최적의 입지를 가졌음에도 첨단기술의 집약체인 우주센터를 2001년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에 내줬다. 지역사회의 갈등과 불신 때문이었다. 지금은 제2공항 건설을 놓고 갈등 중이다. 국책사업도 흔들리는 판에 수도권 이전 1호 기업인 카카오가 떠나도 할 말이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