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의 역설
코로나의 역설
  • 고시연 기자
  • 승인 20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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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임 수필가

독일이 이동봉쇄 명령을 내리던 날, 몹시 초조한 심정으로 딸의 전화를 기다렸다. 드디어 정오 무렵 엄마! 탈출에 성공했어요.’라는 음성이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부터 날아들었다.

문득, 성경 말씀이 가슴을 뜨겁게 달군다. “민족들이 서로 싸우고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하늘로부터 무서운 징조들이 나타날 것이다.”(누가복음)

세계는 코로나바이러스 라는 작은 미생물이 퍼트린 전염병으로 수난을 겪고 있다. 특히 기저질환을 지닌 노약자들의 사망 소식은 더욱 가슴을 시리게 한다. 나 역시 성인병을 지니고 살지만 나보다는 외국에 사는 딸자식의 염려로 노심초사하다가 간신히 항공권을 구매했다는 낭보에 근심을 내려놓았다.

딸은 유학을 마친 뒤 그곳에서 둥지를 틀었다.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킨 게르만 민족의 습성을 배웠는지 매사에 철저한 편이다. 하지만 장거리 비행에 많은 승객과 동행한다는 것이 염려스러웠다. 게다가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유럽인들이 한국으로 피신해 오기도 한다는 정보에 마스크를 쓰고 손 소독제를 꼭 사용하라고 신신당부했다.

딸은 기내 상황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보냈다. 승객들은 거리를 두고 앉아있었다. “엄마, 오늘처럼 긴박한 상황에서는 지혜가 필요하네요. 돈을 유효적절하게 쓰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기에 편안하게 날아갑니다. 엄마 사랑해요.” 메시지가 뜨고 전원이 꺼졌다. 일단 탑승했다니 안심이었다.

오랫동안 우리 모녀는 서로 그리움과 기다림으로 살았다. 하지만 오늘의 비행거리 열두 시간은 고희를 살아온 세월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드디어 문자가 날아왔다. ‘인천공항 도착, 검역을 받고 제주로 달려갑니다.’ 짤막한 메시지는 반가웠지만, 만남은 다시 유예되었다. 2주간 자가 격리해야 한다는 국가방침에 미리 정한 장소로 이동한 뒤 은둔생활에 들어갔다. 매일 화상통화로 안색을 살피고 새장에 갇힌 새처럼 창문을 통해 생필품을 전하고 돌아가는 내 모습을 사진에 담아 그리운 마음을 전했다.

어느덧 2주가 지나고 딸은 무사히 돌아왔다. 그동안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경험했지만, 격리가 해제되는 날 우리는 뜨겁게 부둥켜안았다. 손을 꼭 잡고 집으로 가는 올레길 돌담 사이로 은별 같은 밀감 꽃이 초여름 길을 향기로 가득 채웠다. 코로나의 공포를 피해 찾아온 딸과의 재회는 오랜만에 이루어졌다. 순간, 세월 속의 아픈 추억 한 토막이 떠올랐다.

어미 닭의 품 안에서 살아야 할 병아리들을 고향에 두고 정처 없이 흘러온 곳이 물설고 낯선 섬마을이었다. 온종일 삶과 씨름하다가 하루해가 기울고 노을이 붉게 물들면 귀소본능을 지닌 사슴처럼 고향을 향해 무릎을 꿇고 아이들의 건강을 빌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명언을 새기며 견딘 세월이었다. 타향살이도 어언 반평생을 넘겼다. 어린 남매는 비바람이 부는 날에도 언덕에 서서 행인들 사이로 엄마 모습을 찾아 헤맸다던 이야기에 가슴이 저며왔다. 나 역시 오직 빵을 얻기 위해 영과 육을 바쳤던 드라마 같은 인생사가 아니었던가.

창밖엔 유월 장맛비가 내린다. 불혹을 넘긴 딸은 날마다 영양식을 만들어 내 입맛을 찾아주려고 분주한 시간을 보낸다. 기다림으로 엉킨 실타래가 오랜만에 곱게 풀렸다. 모처럼 딸과 함께하는 이 귀한 시간이 역설적이게도 코로나19가 만들어 준 축복이라니 묘한 감정을 느낀다.

전염병의 기세가 심상찮다. 세계 경제가 흔들리고, 국가들은 전쟁터 같은 상황 속에서 국민을 지키기에 여념이 없다. 누군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믿으라 했다지만, 물러가고 있던 바이러스는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무더위 속에서 마스크를 쓰면서, 문득 인류는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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