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멜이 처음 밟은 제주 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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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도착한 순간부터 14년 동안 거주하다 탈출하던 순간까지 모든 과정이 기념비적 사건이 되고 역사로 기록된 서양인이 있다.

하멜 표류기를 집필, 서양에 한국을 최초로 알린 핸드릭 하멜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코로나19와 폭염으로 바깥나들이조차 꺼리던 지난 16일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2리 속칭 도구리알해안에서 하멜 일행 난파 희생자 추모식이 마을주민들에 의해 경건하게 열렸다.

1653816일 하멜 등 선원 64명을 태우고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상선 스페르웨르(Sperwer)’호가 제주 근해에서 태풍을 만나 난파돼 표류하던 중 26명의 희생자를 내고 제주 해안에 상륙한 것을 추모·기념하기 위해서다. 신도2리 주민과 향민회원들은 2012년부터 추모식(헌다제)을 개최해 오고 있는데 2017년에는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아 위령비까지 세웠다.

신도2리 주민들이 뜻을 모아 추모식을 열고 있는 것은 하멜 일행이 제주에 상륙한 곳이 신도2리 해안이라는 확신, 그리고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신도2리 주민들은 1694(숙종 22) 제주 목사를 지낸 이익태가 쓴 지영록(知瀛錄)’의 서양인표류기에 하멜 일행의 난파 지점이 大靜縣地方 遮歸鎭下 大也水沿邊(대정현지방 차귀진하 대야수연변)’으로 기록돼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제주문화원이 발간한 지영록 번역본 각주에도 난파 지점이 한경면 고산리 한장동과 대정읍 신도2리 사이의 해변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이 있고, 국립제주박물관도 하멜 일행이 표류하다 도착한 표착지(漂着地)가 이 지역일 가능성이 크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신도2리 해안은 하멜 표착지로서 공인을 받지 못하고 있다. 관계당국이 고증이 필요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어 표착지 논란은 수십년 이어지고 있다.

반면, 옛 남제주군은 1980년 안덕면 사계리 용머리 해안에 하멜기념비를 세운 데 이어 2003년에는 스페르웨르호를 재현한 상선 모형을 제작, 하멜기념관으로 운영해 왔다.

하멜이 7년 거주했던 전남 강진에는 네덜란드 풍차와 하멜 전시관이, 하멜이 2년 배치됐다가 일본으로 탈출한 여수에도 하멜 등대와 하멜 전시관이 설치돼 있다.

하멜의 첫 도착지가 용머리 해안인지, 신도2리 해안인지 정리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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