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와 예의
질서와 예의
  • 제주일보
  • 승인 2020.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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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후텁지근한 날인데 운동장 트랙을 걷는 이들이 유독 많다. 중앙선 오른쪽 트랙으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물 흐르듯 남의 등을 보며 걷는다. 그러다 출구로 빠져나가거나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 합류한다. 말이 필요 없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질서다.

앞서가고 싶은 사람은 오른쪽 대열에서 벗어나 왼쪽으로 빠졌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들어온다. 차가 앞지르기하는 것과 같다. 왼쪽 트랙을 비우는 것은 타인의 운동 흐름을 고려한 배려요, 공간 질서를 위함이다. 간혹 두서넛이 나란히 걸으며 트랙을 차지해 흐름이 꼬일 때가 있거나, 역방향에서 달려오는 사람이 있어 당혹스럽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닌, 질서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는 예의다.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판단해 타인에게 폐가 되지 않게 인지해 행동하면 되는 일이다. 질서는 규칙이다. 예의와 질서를 잘 지키는 사회는 밝고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있겠다. 평소 남을 배려하는 마음만 있다면 쉬운 일인데 너나없이 무심하게 산다.

어린아이가 사물에 눈을 떠 갈 때부터 도덕 교육은 시작된다.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 집 안에서부터, 부모가 쓰레기를 어떻게 버리는지부터 가르친다. 조그마한 일이 자라면서 지켜야 할 공동체 교육의 출발점이 된다. 어려서부터 자연을 사랑하고, 예의와 질서에 대한 철저한 교육을 공들여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얼마 전, 21대 국회가 개원했다. 대통령의 국회 개원 연설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 때다. 정책 연설 과정에서 여당과 야당의 표정이 확연히 달랐다. 한쪽에선 박수를 보내고 열렬히 호응을 하는 반면, 다른 의석에선 전혀 무응답이다. 졸고 있는 듯, 휴대폰을 들여다보거나 옆의 의원하고 얘기하는 모습이 화면에 비쳤다. 같은 방법으로 서로 딴전을 피우고 있는 의도적인 행동이 내 눈엔 옹졸하고 딱해 보였다.

전 국민이 지켜보는데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싸움에도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진중하게 경청하고 분석해 옳고 그름을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야당과 여당이 한목소리를 내는 국회는 요원한 것인가. 법을 지켜야 할 곳에서 질서를 무시하고 예의도 없이 걸핏하면 싸움질하거나, 말꼬리나 붙잡고 늘어지는 국회. 국민들의 시선이 두렵지 않은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하지 않은 행태가 씁쓸했다.

왜 우리 정치인들은 여유와 유연성이 없을까. 소통이 안 돼 폐쇄적인, 당과 정책이 다르다 하여 견제와 반대만 있고 타협과 수용은 없다. 나라를 위한 일에 여당·야당이 어디 있겠는가. 유머는 정치의 윤활유라고 한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같은 유머와 위트가 있는 정치판이 아쉽다.

도로 주행속도를 하향 조정한 계도기간 중인 걸 깜빡했다. 제한속도를 위반했다는 계도장을 받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세월이 너무 빠르게 간다고 가슴 조이면서, 운전이나 인생도 속도인데 무심하게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만 보고 달리느라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면서 천천히 가자. 바쁜 차량에 양보하고 무례하게 끼어들기 하는 얌체 운전자에게, 인상 쓰며 눈 흘기지 말고. 초심으로 돌아가 제한속도에 맞게 운전을 즐기는 습관으로 달라질 것을 다짐해 본다.

장맛비에 태풍을 몰고 오는 바람이 거세다. 완만한 언덕의 억새가 뽑힐 듯 요동을 친다. 여인의 긴 머릿결처럼 푸른 풀밭도 바람을 탄다. 허리 부러질 듯, 눕듯 풀 한 포기도 방향을 거스르지 않는다. 자연에 순종하는 질서가 참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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