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팽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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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수 시인·수필가·아동문학가

마을에는 터줏대감 역할을 하는 고목들이 서 있었다. 고목을 중심으로 정자가 마련되거나 평상이 놓였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자리로 쉼팡(쉼터)이 되기도 하고, 마을 사람들이 지친 몸과 마음을 풀어 가는 곳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손에 손에는 폭총을 들고 있었다. 폭낭의 열매를 따서 딱총놀이를 하려고 모여든 것이다. 대나무 꼬쟁이를 꽂아 탁 치면 팽나무 열매가 멀리 날아간다. 이를 팽총이라 하는데, 이 때 하며 날아가는 소리가 난다고 해서 팽나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한다.

한 여름으로 치닫고 있다. 우는 것일까? 노래하는 것일까? 괄괄하면서도. 우렁찬 대합창소리다. 한낮의 이글거리는 가운데, 누군가 선소리 낸다. 맴맴맴. 연달아 후렴으로 따라 나온다. 쉴새 없이 그치지 않는 저 왕성한 삶의 소리는 의욕에 넘치는 것 같다. 그렇다. 저 팽나무에 매달려 있는 말매미, 저들에게 저 소리가 없다면 이 여름은 얼마나 적막할 것인가? 매미가 암컷을 향한 구애의 표현을 하듯 혼신을 다해 우는 합창은 계절이 주는 축복일 것이다. 숫컷은 정작 자신이 내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고 하는데.

말매미가 17년 동안이나 땅속에서 살다가 번데기로의 형태로 밖으로 나와 껍질을 벗고 성충이 된 매미가 아니던가. 한철 그것도 며칠 동안 울기 위한 그들의 긴긴 기다림이었다. 매미의 일생이 너무나 짧다.

그늘에서 잠시 바쁜 일손이 숨 돌린다. 어르신들이 팽나무 정자를 중심으로 장기를 두고 있다. 구경꾼들이 가만히 있을 수 없다. 한 수를 가르쳐주는 훈수소리가 끼어드니 장기판이 커진다. 연노란 잎으로 변한다. 우렁차게 울고 또 울어주는 매미소리에 폭은 용기를 얻어 빠른 속도로 알알이 영글어 간다.

가을햇살과 고마운 바람이 불어오니, 팽나무 열매는 붉은색을 띄면서 노랗게 익어간다. 탐스럽다. 하굣길이다. 한 줌 따다 입안에 집어넣으니, 곶감과 비슷한 맛을 낸다. 동네 아이들은 번갈아 가면서 이 맛에 끌리어 원숭이처럼 나무타기를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는다.

도내 상가리에 뿌리내리고 있는 최고령인 팽나무는 천년을 훨씬 넘어섰고, 명월리, 성읍리에 팽나무가 마을의 역사를 담아내왔다. 온갖 세월로 풍상을 함께 한 기묘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는 마을의 팽나무가 한 그루 한 그루씩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다.

마을의 쉼팡이면서 어르신들의 지친 심신을 풀어준 팽나무 그늘, 농사일에서 동네의 경조사까지 삶의 애환을 모두 만날 수 있으니, 동네 한 바퀴를 돌아왔지 않는가. 매미의 합창소리도,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나무 그늘이 한층 선선함이 그립다. 터줏대감이 쓴 소리 한 마디라고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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