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성당 그리고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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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창, 신학박사·서초교회 목사

러시아의 모스크바 한가운데에 크렘린궁이 있고 그 앞에 붉은 광장이 있는데, 광장 둘레에 기억에 남는 세 건축물이 있었다. 우선 크렘린궁에서 광장 건너편으로 굼이란 이름의 크고 넓고 아름다운 백화점이 있었다. 두 번째로 광장의 중심부는 레닌의 무덤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세 번째로 기억에 남는 것은 성()바실리 대성당이다. 바실리 성당은 16세기에 세워져서 러시아 혁명기에 살아남았고 지금도 전통 종교의 위엄을 보이면서 그들의 고난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기독교의 교회이다.

역사의 연륜으로 따지면, 크렘린궁이 13세기부터 러시아 정치종교의 중심 역할을 해왔고, 바실리 성당은 16세기에 세워졌으며, 굼백화점은 1890년에 세워졌으니까, 광장의 중심을 차지한 레닌의 무덤은 연륜이 가장 짧은 셈이다.

1930년대에 소련이 레닌의 무덤을 만들 때는 그의 혁명과 사상을 온 세상에 전파하려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무덤을 바라보는 러시아인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은 혁명가의 무덤과 죽음을 지켜볼 뿐이다. 혁명의 종주국에서는 혁명가나 사상이나 무덤 근처를 서성이는데, 우리에게는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정치 공학 수단의 형태로 살아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무역이나 백화점을 생각하면 한국은 세계를 앞서가는 것이 분명하다. 교회 역시 전통이나 학문에선 뒤쳐질지 모르나, 목회나 선교의 활력은 어느 나라보다 강한 편이다. 그리고 학문과 이론보다는 정치 세력을 과시하는 사회주의 사상 역시 만만치 않다. 모스크바에서는 잠자는 레닌이 이 나라에서는 무덤 밖을 활보하고 있는 중이다.

얼핏 생각하면 백화점, 교회, 그리고 혁명가의 무덤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 셋은 가까이 지낼 수밖에 없었다. 대단한 백화점은 경제적 번영의 시대를 상징할 것이요. 번영의 시대에 급성장한 교회는 비판과 거부의 사회사상을 낳게 될 것이다. 그렇게 태어난 사상은 화려한 백화점이나 커다란 교회와는 다른 혁명의 방향을 가리키게 될 것이다.

우리가 만나고 모이는 것을 싫어하는 코로나19는 백화점 경제에 치명적이다. 절대자와의 만남과 성도의 모임에 근거한 교회 역시 코로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노동자의 단결을 생존수단으로 삼는 사회사상 역시 코로나19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코로나19와 어울리지 못하는 이 셋은 미래로 향한 길을 어떻게 찾을지, 요즘 이 나라에서 제각기 전전긍긍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모스크바의 광장에서는 서로 좀 떨어진 가운데, 오래전부터 셋이 공존해 왔다.

러시아어로 일요일을 바스크레셰니예라 부른다. 우리 말로 번역하면 부활이라는 뜻이다. 혁명의 시대에도 그 성당은 그 광장에 살아남아 있었고, 그때에도 그들의 일요일은 바스크레셰니예였다. 혁명가에게는 반동적인 이름으로 들렸을 텐데 말이다.

백화점이나 교회나 무덤이나, 때로는 가까이 때로는 멀리 함께 살아온 것이 인간의 역사가 아닌가? 배제와 배척으로 너무 예민해진 시대에 어렵더라도 함께 살아갈 길을 찾아야 할 것이 아닌가? 붉은 광장에서 붉은이라는 말은, 누군가에게는 혁명의 피를 의미했지만, 본래는 아름답다’(크라스나야)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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