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토 확장 도전과 문화 대국의 힘 보여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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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 최규일 선생의 절·개·론
(3)광개토대왕의 기개-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대륙으로 뻣어나간 기개와 웅지
북극 등 새로운 영토 개척 나서야
훈민정음 자주·애민·실용 정신 담겨
제자 원리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
‘하늘 아(·)’ 고쳐 부르고 고어 살려야
세종대왕 굳은 절개로 탄생한
한글 선양으로 국위 떨쳐야
국립한글박물관이 지난 7월 마련한 ‘순우리말 한글 이름’ 전시 장면.
국립한글박물관이 지난 7월 마련한 ‘순우리말 한글 이름’ 전시 장면.

광개토대왕의 기개와 웅지

짐이 가는 곳이 수도다.”

고구려 광개토대왕(374~412, 재위 391~412)의 야심만만한 기개와 웅지와 도전정신이 깃든 말이다. 전쟁에 임하는 다짐과 각오를 갖게 된다. 전쟁에 이기려면 전략과 도전과 상상력이 있어야 한다. 도전과 상상력이야말로 광개토대왕이 전쟁에 이기는 비결이 아니었을까? “짐이 가는 곳이 수도다.”라는 말은 중국 후연과 백제 전장에서 남긴 말씀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e뮤지엄에서 공개한 광개토왕릉비 유리건판 디지털 사진.
국립중앙박물관이 e뮤지엄에서 공개한 광개토왕릉비 유리건판 디지털 사진.

광활한 국토 확장

고구려 19대 군주 광개토대왕은 혼란한 동북아 정세 속에서 영토와 세력권을 크게 확장시켰다. 평생에 걸쳐 64개 성()1400()을 공취(攻取)했다고 기록돼 있다. 동북쪽으로는 책성(柵城·훈춘), 남방쪽으로는 소해(小海·한강유역), 동쪽으로는 흑룡강유역, 서쪽으로는 요하(라오허강)에 이르렀다.

광개토대왕이 이룩한 공적은 서양의 알렉산더와도 비견되는 우리 민족의 자랑이다. 광개토대왕이 이룩해놓은 업적을 바탕으로 그의 아들 장수왕이 고구려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광개토대왕릉비는 광개토대왕 훈적을 새긴 비석이다. 414년에 장수왕이 아버지의 업적을 찬양하고 추모하기 위해 왕릉 곁에 세운 비석이다. 중국 지린성 퉁거우에 위치한다. 사면석비로 높이가 약 6.39m이다.

다음은 비문의 내용 일부이다. 18세에 왕위에 올라 연호를 영락(永樂)이라 하였다. 태왕의 은택이 하늘까지 미쳤고 위무(威武)는 사해에 떨쳤다. (나쁜 무리를) 쓸어 없애니, 백성이 각기 그 생업에 힘쓰고 편안히 살게 되었다. 나라는 부강하고 백성은 유족해졌으며, 오곡이 풍성하게 익었다. (그런데) 하늘이 (이 백성을) 어여삐 여기지 아니하여 39세에 세상을 버리고 떠나시니, 갑인년 929일 을유에 산릉으로 모시었다. 이에 비를 세워 그 공훈을 기록하여 후세에 보여주고자 한다.

천공의 절개가

잃어버린 광개토대왕 때의 광활한 영토를 회복해서 더 넓은 국토를 확장해 나가야 한다. 5000만 국민이 똘똘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각오를 굳게 갖는다면 통일을 성취할 수 있다. 그러려면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도전정신을 이어 받들어야 한다.

국토는 나라의 국력이다. 세계의 여러 국가들은 왜 영토에 집착하는가. 그 이유는 바로 지리를 이용한 영토 확보에 달렸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지정학적·지리적 특성 때문에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강대국의 요충지다.

머지않은 앞날에 3차 세계대전이 발발할지 모른다. 대한민국은 어떤 대비를 어떻게 해야 할까? 주인 없는 땅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그곳이 어디일까? 사람이 살지 않는 주인이 없는 북극이나 남극을 탐사해 영토 확장에 나서야 한다.

북극은 21세기 경제 외교의 각축장이요, 영유권 확보에 최고 관심사다. 북극은 육지요, 남극은 바다이다. 지구에서 가장 추운 곳은 남극이다. 남극에는 원주민과 주인이 없다. 그러나 북극은 아직 개발되지 않은 석유자원이 4분의 1이 북극에 매장돼 있다.

국토 확장을 위해서는 새로운 통일정책이 요구된다. 북극에는 다산기지를 설치했다. 다산기지가 있지만 아주 미미하다. 한국인이 이주해 거주민이 살도록 하여 북극 땅을 확보해야 한다.

지금은 빙하가 녹아 남으로 흐르고 있다니, 북극 기지를 확보한 뒤에 북극에서 남으로 내려오는 남진정책을 펼친다. 현재는 남한과 북한이 대치한 상황에서 직선적 북진정책은 어렵다. 북극에서 내려오는 남진정책으로 우회적 북진정책을 펼치는 전략이다. 넓은 대륙과 바다를 개척해야 한다. 북극을 탐사, 한국인 특유의 독창성을 유감없이 발휘해서 고구려 광개토대왕 때의 가장 광활한 영토를 회복하면서 새로 탄생할 대한민국의 영토를 확장해 가야한다.

광개토대왕의 늠름한 기개와 상상력을 이어받아 웅지를 펼쳐 세계를 도전해야 한다. 우리의 민족혼을 불어넣어 5000만 한겨레를 하나 되게 해야 한다. 그 길만이 살길이다. 천공의 절개가를 다음과 같이 지어본다.

왼손에 칼을 잡고, 오른손엔 총을 들고 싸움터로 나가니/어디서 북소리 나팔소리 일성호가에 적군이 달려오니/대장부 호기로 위국충절을 세워볼까 하노라.

성군 세종대왕의 지조와 절개

나라말이 중국과 달라 한문·한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끝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하여금 쉽게 익혀 날마다 씀에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훈민정음 서문) 조선의 4대왕 세종대왕(1397~1450, 재위 1418~1450)은 역대 어느 왕보다 백성을 사랑하고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어진 임금이었다. 한글 창제 3가지 근본은 자주(自主애민(愛民실용(實用) 정신이다.

훈민정음 창제

이 지구상에는 약 7000여 종의 언어와 약 40여 종의 문자가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우리 한글은 세계 문자 역사상 글자의 제자 원리가 가장 과학적이고 뛰어나 우수한 글자다.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전까지는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글자는 지은이와 지은 연대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훈민정음은 창제자와 창제 연대가 밝혀졌다. 1443년 창제해 1446년 반포했다.

훈민정음 창제 의의와 가치는 세계 문자 개혁이요 문자 대혁명이다. 한글의 혜택은 문맹 퇴치에 기여함이다. 사람과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의사소통의 도구이다. 글자 제자 원리가 가장 과학적이고 조직적이며, 누구나 쓰기 쉽고 편리하다. 우리나라는 한글이 있었기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문화대국이 될 수 있었다. 그러니 세종대왕의 생애와 업적 가운데 가장 큰 공적은 뭐니 해도 훈민정음 창제가 으뜸이다.

훈민정음 28자는 여덟자를 기본자로 하여 만들었다. 기본자 자음 , , , , 다섯 자는 발음기관과 발음하는 모양의 세기에 따라 그 모양을 본떴고, 모음 ‘·, , 세 자는 하늘과 땅과 사람 셋을 본떴다. ‘·’는 제주어로 지금도 쓰인다. ‘·’ 아래 아가 아니라 하늘 아(·)’ 자로 고쳐 부르고 고어를 되살려야 마땅하다. 국립국어원에서는 훈민정음 중 소실문자 4개에서 ‘·’를 살려 쓰드록 허용했다.

글 중의 글 한글절개가

세종대왕은 그 많은 훈민정음 반대 상소에도 무릅쓰고 반대하는 신하들을 달래고 설득하면서 굳게 역경을 이겨냈다. 훈민정음 창제야말로 성군 세종대왕의 거룩한 절개(지조)가 아닐 수 없다. 세종대왕의 굳은 절개로 훈민정음이 탄생한 것이다. 그 점에 무한한 경의와 존경을 올리지 않을 수 없다. 세종대왕의 은공에 보답하는 길은 훈민정음을 되살려 한글을 선양해 국위를 떨쳐 나라를 바로 세우는 길이다.

우리는 이러한 세종대왕의 의리를 높이 받들어 한글을 애용하며 우리말 우리글을 더 사랑해야 한다. 바로 나라말 사랑 나라 사랑-한글 사랑 나라 사랑이다.

세종대왕의 거룩한 뜻을 이어가기 위해 천공의 지조와 절개를 지키는 글 중의 글 한글절개가를 읊어본다.

글 중의 글 한글, 오천만의 가슴에/피었네 피었네, 영원히 피었네/백두산 상상봉에 한라산 언덕 위에/겨레의 얼이 되어 아름답게 피었네/별 중의 별 창공의 별 오천만의 가슴에/빛나네 빛나네, 영원히 빛나네/이 강산 온 누리에 조국의 하늘 위에/나라의 글이 되어 길이길이 아름답게 빛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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