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경 속
요지경 속
  • 제주일보
  • 승인 2020.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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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철, 제주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논설위원

처음에는 어처구니가 없었는데너무 오랫동안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지니, 이제는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정의인지 알 수 없는 정도가 되었다.

어떤 사람은 식사를 같이하고 나올 때면 항상 구두끈을 맨다. 그는 구두는 반드시 끈이 있는 것을 산다.”고 했다. 식사를 하고 나올 때면 끈을 매면서 시간을 끌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돈을 내게 하기 위해서란다. 참으로 근천스럽다. 알아도 모르는 척하면 호구로 아나?

매번 남의 호주머니 속 돈으로 밥을 먹는 그 사람에게 단체의 총무를 시켜놓으면 장부를 얼렁뚱땅 적어 제 호주머니를 불리고, 조합을 결성하여 건축 일을 시켜놓으면 남의 돈을 삥땅하여 제 배를 채워 땅도 사고 집도 사고 좋은 차도 사서 젠체한다. 추한 방법으로 돈을 굴려 부를 가졌지만, 머리도 좋지 않은 주제에 공부 또한 소홀히 하여 아는 것이 없으니 학문을 이야기하면 혹 무식이 탄로될까 남의 눈치를 살피거나, 잡스런 정보도 지식이라고 화제를 바꾸어 상황을 덮으려 한다.

내 돈은 마땅히 내 돈이고, 남의 돈도 내 돈이다는 것인가? 온갖 명목으로 이리저리 뜯어내어 내 돈인 양 뿌려대고, 내 편에겐 합법을 가장하여 이런저런 핑계로 나누어주어도 완장 차고 휘두르면 똑똑하다는 세상인데, 그 정도는 애교인가?

세상 사람의 조롱거리가 되어도 좋다. 온갖 고초를 겪고 죽지 못해 살아온 할머님들에게 재주를 부리게 하고 뒤에서 온갖 것을 챙기고도, 의원 나리가 되신 분도 있는데 뭐 그까짓 것 가지고.

한 사람이 나에게 말을 전한다. 자칭 학자라는 분이 전화를 받더니 끊고는 곧장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 외우더란다. 얼마 후 전화하고 찾아온 그분 앞에서 방금 뒤졌던 정보를 줄줄 외우니 영문을 모르는 그분이 매우 감탄하더라고 하면서 나에게 그 현란한 말솜씨를 누가 당합니까?”라고 말한다. 참으로 가증스럽다.

처음 만나는 사람은 그렇게 속일 수 있으나 누구나 몇 차례만 만나도 그의 진면목을 알아버리기 때문에 그는 항상 지난 사람을 배신하고 짓이기며 떠나서 새로운 먹잇감으로 또 다른 사람을 찾아 나선다.

보통의 사람들은 학문이 뛰어나고 인격적인 사람을 만나면 스스로 작아지는 것을 느끼고, 그분처럼 배우고 익혀 그분 같은 훌륭한 인격자가 되고자 할 터인데 저런 자들은 스스로 수행할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남을 어떻게 속일까를 생각하는가 보다.

사람에게는 노예근성이 있는 것일까? 적어도 나는 나보다 훌륭한 사람이 나를 이끌어주면 묵묵히 그의 조치에 순응하고, 나는 나의 일만 하면 참 편하고 좋다. 남들은 그런 나를 두고 고문관이라고 불러도 좋다. 대신 나는 나의 분야에 집중할 수 있어서 내 분야에서만큼은 훌륭한 업적을 쌓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가진 것이라고는 오직 말재주뿐이어서 그런 현란한 말재간으로 남을 현혹시키거나 탁월한 비굴함으로 윗사람에게 아부하여 권력의 자리를 얻어 우리를 가르치거나 지휘하려 든다면 자존심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약장사가 약에 관한 얄팍한 지식으로 약의 효능을 소개하니, 약을 모르는 사람은 그것에 현혹되어 잔뜩 사서 먹었는데 알고 보니 설탕이었다면 그 배신감은 주체할 수 없을 것이다.

강호의 상어와 고래가 횡액을 만나, 땅강아지와 개미에게 억제를 받는 세상이요, 무거운 돌은 띄우고 오히려 가벼운 나무는 가라앉히는 세상이니, 도대체 그 끝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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