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벌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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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논설위원

오봉(Obon)은 매년 양력 815일을 중심으로 지내는 일본 최대의 명절이다.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대개 4일간 지낸다. 이날이 되면 새해 첫날인 오쇼가츠(正月)때처럼 일본 전역은 귀성 인파와 휴가 행렬로 장관을 이룬다.

여기서 일본의 명절을 거론하는 것은 코로나19 때문이다. 우리의 추석과 비슷한 오봉에 드라이브 스루 귀성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도시에 사는 자녀들이 고향에 있는 부모 집을 방문하고도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자녀는 차 안에서, 부모는 차 밖에서 손을 흔들면서 서로의 안부를 확인했을 뿐이다. 선물도 차량 문을 사이에 두고 교환했다. 바이러스 전파를 우려해서다.

추석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오자 고향 방문을 놓고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가족 간의 신경전도 벌어지는 모양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늘면서는 갈등도 심해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차라리 정부가 나서서 추석 이동 제한을 해달라는 글까지 올라왔다. 지역감염, 깜깜이 확진자까지 퍼지는 상황에서 민족 대이동이 자칫 불난 데 기름을 들이붓는 격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여기엔 지난 광복절 연휴의 학습효과가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제주 출신 출향인사들에겐 당장 눈앞으로 다가온 벌초가 고민이다. 수도권에 있는 이들은 더욱더 그렇다. 서울에 있는 한 지인도 최근 전화로 벌초 때 내려가야 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고민이 된다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어왔다. 집안 분들과 상의하라고 했지만, 그 심정 십분 이해할 수 있다.

코로나 때문에 못 간다고 하면 좋은 핑곗거리를 댄다며 오해를 살 수 있다. 제주 특유의 벌초문화를 잘 알기에 벌초 때도 안 왔다라는 말은 주홍글씨나 다름없다. 귀향해서도 문제다. 하 수상한 시절이라 진객(珍客)도 아니고, 불청객(不請客)도 아닌 상황을 맞을 수 있다. 형제 친지들과 가까이서 낫질하며 거친 숨을 몰아쉬는 것도 눈치 봐야 한다. 거리두기 한다며 멀리 떨어져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차 안에서 산천을 감상하는 드라이브 스루 벌초도 가능하지 않다.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 곤란한 상황이 왔다. 할 수 있다면 집안 어른이 나서서 선처를 했으면 한다. ‘사이다같은 답례는 필수다.

코로나 시대 벌초엔 이해와 감사가 절실하다. 모두의 안녕을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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