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탄트 메시지
무탄트 메시지
  • 제주일보
  • 승인 2020.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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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 수필가

코로나로 세상이 어지럽기 전의 일이다. 가족과 나들이 나선 적이 있다. 어디로든 집을 떠나 한가하게 쉬고 싶었다. 각자의 미래를 그리기도 하고 꿈을 격려하기 위한 가족여행 길이다. 제주시를 벗어나 어느 조그만 항구에 다다를 무렵 사람들이 정박한 배들 사이에서 무엇인가 보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모였는지 알고 싶었다. 차에서 내려 다가가 본 광경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태어나 처음 보는 엄청난 크기의 한치오징어다.

그놈은 마치 거대한 붉은 돔처럼 보였다. 사람이 많으면 도망가려고 할 텐데 유유히 우리 앞으로 유영해 왔다. 마치 “나는 오랫동안 당신의 먹이가 되려고 살아왔소, 깊은 바다에서 여기까지 온 것이오.”하는 것 같았다. 여러 사람이 서 있는 곳으로 천천히 오더니 물 위로 떠 올랐다. 어서 나를 잡으라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뱃사람들이 손잡이가 달린 그물망으로 건져 올리려고 했지만, 워낙 무거워서 손잡이가 부러져 버리고 말았다. 꼬챙이가 달린 장대로 건져 올렸다. 사람들은 말을 잃었다. 옆에 섰던 노인이 이런 일은 팔십 평생 처음이라고 한다. 청년 한 사람이 어디선가 저울을 갖고 왔다. 오징어의 몸무게는 15㎏이 넘었다.

제주에서 잡히는 한치는 고작해야 큰 것 두세 개 합쳐야 1㎏이 되거나 조금 넘는다. 그만큼 작은 생물인데 모양은 제주 한치가 분명하고, 크기는 거대하니 팔순 노인의 말이 거짓이 아닐 것이다.

지나가던 관광객까지 초대하는 동네 인심이 푸지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사람, 작품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작가도 손짓해 불러들인다. 회로 먹기도 하고 데쳐서 먹기도 했다. 얼른 막걸리 몇 병을 사서 고마움의 표시를 했더니 어른들이 흡족해한다, 몰려든 사람들과 우리 가족까지 맛있게 먹고도 남은 게 더 많으니 그 크기를 짐작하고도 남지 않겠는가?

묘한 감정이 들었다. 먹이가 되려고 스스로 헤엄쳐 항구까지 오다니. 이런 일은 본 적이 없다는 노인의 말이 가슴에 남았다.

오래 전에 읽은 『무탄트 메시지』라는 책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부족 중 하나는 그들 스스로 ‘참사람 부족’이라 칭하며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5만 년을 살아왔다고 한다. 환경을 훼손하지 않고도 풍부한 식량과 잠잘 곳을 얻었다. 건강하게 살다 영적으로 충만한 상태에서 자연사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문명인을 ‘무탄트’라 일컫는데 돌연변이라는 뜻이다. 세상은 이제 너무나 많이 파괴되었고 오염되어서 부족은 회의를 통해 지구상에서 자연적으로 사라지기로 마음을 모았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결혼도 하지 않는다. 전체 부족이 걸어서 호주 대륙을 횡단하는 길에 자연치유를 전공한 의사를 무탄트 메신저로 선택하여 넉 달에 걸친 사막 도보 횡단에 참여하게 한다. 그 여정의 기록이 책으로 나온 것이다. 참사람 부족이 세상의 문명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깊게 생각해 볼 일이다.

거기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의 먹이가 되기 위해 그 무엇들은 일생을 살고 넓고 깊은 바다를 지나서 또는, 사막이나 세계를 돌아서 결국 저항 없이 나에게 온다는 것이다. 한치가 헤엄쳐 다녔을 차가운 바다와 그 깊이와 거리를 가늠해 보았다. 우리에게 먹히기 위해 세계 어딘가에서는 소가 풀을 뜯고, 깊은 바다에서는 고등어가 자라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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