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버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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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살다 보면 많이 버리게 된다. 낡아 못 쓰게 된 것들이 대상이다. 헌 옷가지, 녹슨 철제품, 해진 신발, 오랜 가재도구…, 책도 버린다. 소장 가치가 없는 거라면, 읽지도 않으면서 공간만 축내고 있을 이유는 없다. 장식으로 전락하면 의미가 없다.

얼마 전 시내로 이사하며 적잖은 책들이 곁을 떠났다. 전집류도 과감히 정리했다. 출판한 지 반세기가 된 것들이 누렇게 떴을 뿐 아니라 세로쓰기에 좌서(左書) 체제가 오늘에 맞지 않아, 아이들이 읽으려 하지 않는다. 고서(古書)가 돼 버려도 그 시대의 향기는 변함이 없는 거라고 토를 달려다, 그만뒀다.

요즘 출판이 얼마나 깔끔한가. 장정(裝幀)이 하도 좋은 바람에 내용이 다소 빈곤해도 대충 넘어가기도 하는 세상이다. 서가에서 책들을 들어내 아끼는 후배에게 골라가도록 하고 나머지는 무게를 달아 돈이 되는 이가 끌고 온 차량에 올렸다. 마음자리가 씁쓸했다. 골라내는 손이 걸러냈음에도 천 권이 더 될 것 같았다. 오랜 세월 주고받은 정리에다 손때 묻은 것들과의 이별이 예사롭지 않았다. 아깝지만 버렸다.

국산보다 외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특히 일본 제품이 훨씬 고급스럽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제품이 훨씬 빼어난 데도 그런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주변에 상당히 널려있으니 놀란다. 중국이나 미국 혹은 유럽 쪽을 선호하는 취향이 있음도 쉽게 목도할 수 있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글을 쓰며 한자어나 외래어(외국어)에게 순우리말이 그 자리를 내놓는 수가 많아 안쓰러울 때가 있다. 한자어나 외래어가 더 고품격이란 현학(衒學) 취미가 고개를 쳐든다면 엄연한 ‘신판 사대주의’다. 순우리말은 아침 이슬처럼 영롱하고 마을 앞 개울처럼 고운 운율로 흐른다. 이렇게 아름다운 순우리말의 맵시를 공유하지 못한다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순우리말 자리에 들어간 한자어나 외래어는 우리 정신을 흐리게 할지도 모른다.

다섯 마리 고양이 주검이 아무렇게나 버려진 현장이 보도됐다. 참혹했다. 아마 독살했으리라. 반려가 아닌 길고양이일 수도 있다. 인연을 맺었든 아니든 한꺼번에 몰살할 만큼 사람이 부도덕한가. 자연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고양이들도 한 생명으로서 인간과 함께 생을 누릴 권리를 가진 존귀한 존재다. 장비를 동원해 살해하는 것은 인간의 우월감이 한 타자에게 저지르는 죄업이다. 버릴 것과 버려서는 안될 것에 대한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누구에게도 생명을 제멋대로 할 권리는 없다. 책임질 수 없으면서 왜 거두는가.

길에 마스크가 길바닥에 버려진 걸 보면 섬뜩하다. 사려고 약국 앞에 줄을 섰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버려지고 있다니. 눈앞에 방역 레드라인이 그려지고 있지 않은가. 지금 우리는 코로나19로 삶이 멈출지도 모르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사회 경제적으로 전에 없던 심각한 제약을 받고 있다. 방역수칙을 준수하는 것만이 난국을 이겨내는 길임을 알고 실천해야 한다. 마스크 잘 버리기도 방역 못지않게 중요하다. 쓰다 버려지는 마스크에는 세균이 우글거린다. 이미 오염된 것이지만 사람들이 오가는 길에 나뒹굴어 있는 걸 보고 있자면 소름이 돋는다. 잘 버리는 것도 방역이다. 반드시 종량제 봉투에 넣어 소각시켜야 한다.

어제까지 생명을 지켜주던 마스크다. 저렇게 버려질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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