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글 한 걸음’, 도민사회를 울리는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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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옥,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논설위원

부끄럽게도 9월이 ‘대한민국 문해의 달’인 줄, 올해 들어 알았다. 이는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가 9월 8일을 ‘세계문해의 날’로 지정한 데 기인한다. 유네스코는 문자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인 ‘문해력’을 교육권의 기초단계로 규정해, 전 세계적으로 문맹퇴치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유엔이 세계인권선언에 선포한 ‘모든 인간의 교육받을 권리’, 즉 학습권은 우리나라의 교육기본법 제3조, ‘모든 국민은 평생에 걸쳐 학습하고, 능력과 적성에 따라 교육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평생교육으로 보장돼 있다. 또한 국가는 평생교육을 진흥하여야 하며, 평생교육진흥 관련업무를 지원하기 위하여 평생교육진흥원을 설립해야 한다(헌법 제31조 제5항, 평생교육법 제19조 제1항).

따라서 문해교육은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Jiles)의 주요사업 중 첫 번째에 자리한다. Jiles가 실시한 ‘제주지역 문해교육기관 운영현황 조사연구’에 의하면 제주지역은 학력특성 면에서 무학자 비율이 전국대비 현저히 높고, 저학력인구(무학∼중학교 졸업 이하) 또한 많아서, 문해율이 무척 낮은 편이다. 여성의 비문해율은 남성의 세 배가량이다.

그래서일까? 올해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글 한 걸음, 소통 두 걸음, 희망 세 걸음’이란 주제로 실시한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서는 제주지역 학습자들의 작품이 주목을 받았다. 영락학당에 다니는 이영순 학생의 글은 제주도 어머니들의 심금을 울린다. ‘눈 뜬 봉사였던 내가, 영락학당에서 글을 배웠으니, 먹고 살기 힘들어 나를 학교 못 보내, 가슴앓이 하시던 엄마 무덤에, 이 시를 바칩니다. 엄마, 이젠 내 어깨에 날개를 달았으니, 눈부신 봄 하늘을 마음껏 날 수 있답니다. 코로나로 집에 갇혀 있어도, 이젠 지루하지 않아요. 책도 읽고 손녀에게 편지도 쓰며, 즐거운 나날을 보낸답니다. 그러니 엄마 속상해 마시고 그곳에서 편히 쉬세요.’

이처럼 학습자들의 상당수가 문해과정을 끝내고 나서 가장 먼저 쓰는 글자가 ‘어머니’다. ‘보고 싶은, 사랑하는, 그리운, 가난한, 서러운, 혼자인’ 어머니들이 딸들의 눈물 고백을 통해 희망으로 피어난다. 때로는 어머니 자신의 인생이 시가 된다. ‘아기 낳아질 줄 알아시민, 검잴매러 안갈건디, 그땐 전기도 어실 때, 돈이 어시난 놈이보리밭이 강, 검질 매멍 동받앙 썼주. 일당 4천원 헐 때, 검질매는디 배 아판, 집에 오는디 길에서 바락 아기가 쏟아진거라. 내가 뱃도롱줄 잘못 끊어신가, 3월 초하루날에 낳아신디, 4월 초하루날은 가부런. 나 막 울언. 잘도 잘도 울어서. 이게 제일 억울한 일이라. 아기한테 잘도 미안허여.’ 나도 울었다.

사실 제주지역의 문해학습자들은 해방 전후의 전쟁과 4·3 등 역사적 사건을 겪은 세대로, 배우고 싶어도 배울 기회가 없었다. 이러한 상황이 문해현장의 현실 속에 그대로 녹아 있다. ‘4·3 후에 었더게 살아시냐, 일만 하다보니 83세 돼었다. 일년에 제사 5번, 명절 4번 해다. 인생 고달프고 살앗다. 하루에 물 7번 질어왓다. 촐 백바리, 땔감 1000묵, 얀마 16마력, 두사람 데령쎃다. 밤 4시에 일어나서 살아다. 아들4 딸2 6남매. 나이 인생은 이거다.’  

실제로 문해능력은 단지 글을 쓸 줄 아는 게 아니다. 학습권과 행복권의 기본 전제다. 제주지역에서는 서귀포 오석학교, 제주시 동려평생학교를 비롯해 20여 개 기관이 문해교육을 담당한다.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의 할 일이 태산 같다. 가슴이 파도친다. 내일은 하늘도 높푸른 문해의 날, 부디 햇빛 찬란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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