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터 유감(有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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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진 동화작가

어린 소년이 병아리를 보고 있었다. 가슴 털이 보송보송한 병아리와 빨간 앵두 같은 토끼 눈을 보는 순간 소년은 망설임 없이 입을 열었다.

병아리 허곡 토끼폽써

장터에서 소년은 그렇게 토끼 두 마리와 병아리 열 마리를 샀었다. 한라산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서사라 벌판에 제주 최초(?)의 오일장이 있었다. 중학교 입학을 앞둔 늦가을로 기억되는 그 날 학비를 스스로 마련해야겠다는 일념으로 먼 길을 걸었던 기억이 아련하게 다가온다.

그 후 55년이 지났고 세상은 변하였다. 강산이 다섯 번도 더 바뀐 지금 장터에선 기상천외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장터에서 벌어지고 있다니 우리 할머니들이 다시 살아 돌아온다면 이거 무신 세상인고!’ 하면서 탄식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최근 조간신문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장터가 애플리케이션에 다 있다니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유명 화장품을 넣었던 박스(box)가 비싼 값에 팔리는가 하면 연예인 얼굴이 들어간 빈 사이다병도 팔고 있다는 기사였다. 구매 목적이 또한 가관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SNS 사진을 촬영할 때 조회 수를 늘리기 위함이라니 달리 할 말을 잃었었다.

아예 통째로 SNS를 팔기도 하는 모양이다. 구독자 2만 명을 보유한 유튜브 계정이 3백만 원 이상에 팔리다 보니 구독자와 조회 수를 늘리려는 유튜버들의 눈물겨운 노력을 폄하貶下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돈 때문에 울고 웃는 세상이다. 오히려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야 옳다.

플랫폼거래 장터에 스타트업은 물론 대기업도 뛰어드는 걸 보면 참신한 아이디어로 SNS 장터를 장악하여야 살아남는 세상이 된 것 같다. 동네 장터를 장악한 대표 서비스 당근 마켓은 중고거래를 넘어 아예 동네 커뮤니티 서비스를 장악하고 있다고 한다. 생활반경 6km 이내에서 중고 물품을 사고파는 서비스로 고객층이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하다니 이쯤 되면 동네 장터가 천지개벽을 한 것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듯싶다.

세상에는 오랜 것일수록 더 반짝이는 것들이 있다. 밤하늘의 별처럼 젊은 날의 짝사랑처럼 그렇게 오래 반짝이는 추억追憶들이 시류에 밀려 사라져가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백로白露가 지나고 추분을 앞두고 있어서일까? 별들이 유난히도 반짝인다. 오래 볼수록 더 반짝이는 저 별들처럼 장터를 찾아 먼 길을 걸었던 그 유년幼年의 기억들을 더 또렷이 살려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 밤 서사라 장터로 희망을 찾아 떠났던 그 소년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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