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 다니는 자력 철
걸어 다니는 자력 철
  • 제주일보
  • 승인 202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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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익 칼럼니스트

내 별명은 ‘걸어 다니는 컴퓨터’였다. 지금이야 공무원 각자마다 컴퓨터 하나씩을 차고앉았지만, 그 당시는 컴퓨터가 일반적이 아닐 때여서 신기함을 느낄 정도였다.

사무실 하나에 컴퓨터도 한 대 일 때였다. 같은 과에 근무했던 과장이 주무인 내게 붙여준 별명이 걸어 다니는 컴퓨터였다. 2년간 보상금 급여의 일과 일반회계의 일을 한 치의 착오도 없이 처리했다. 내심 그 별명이 싫지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 확대간부회의가 있었는데, 기관장은 판공비가 얼마 남았는지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었다.

그 부분만 간단히 외우고 회의에 임하면 그만이었다. 걸어 다니는 컴퓨터가 있을 턱이 있는가. 외우려고 하면 착오가 없이 정확하다.

국가공무원은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인사적체가 극심하다. 내 경우도 7급 공무원으로 지역별 채용에 수석을 했건만 명예 퇴직할 때까지 10년 동안 그대로 7급 행정주사보였다. 인사적체가 그렇게 심해서 10년을 근무하고도 승진의 가능은 없었다.

그 과장은 9급으로 시작해서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는 행정사무관을 거쳐서 서기관으로 승진했고, 기관장으로 근무하다가 정년퇴직을 하였다.

그런데 남다른 특기를 가졌다. 3000여 자력(보훈가족의 이력 철)을 그대로 꿰었다. 가만히 앉아 있어서 자력 철을 전부 외운 것이 아니라, 그만한 노력을 했을 것은 당연하다.

국가유공자의 자력 철을 보지 않고도 그 집안의 사정을 훤히 꿰는 비상한 능력의 소유자였다. 글자 그대로 우리는 과장을 ‘걸어 다니는 자력 철’ 이라고 불렀는데 9급에서 행정사무관, 서기관을 거치면서 기관장으로 정년퇴임을 했다.

문득 ‘남과 똑같이 해서는 남 이상 될 수 없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맞는 말이다. 오래 전에 친척 형의 집에 걸려 있는 액자에 담긴 글이다. 독학재수로 수년간을 애쓸 때 힘이 되어준 글귀다. 남과 똑같은 정신으로 공부했으면 대학은커녕 말단 공무원 시험도 붙지 못했을 것이다. 농고를 나와서 예비고사에 펑펑 떨어질 때여서 혼자 붙었다. 남과 똑같은 노력이었으면 어림도 없는 얘기다.

과장은 비상한 노력이 아니었으면 행정사무관도 어려웠을 터이다. 걸어 다니는 자력 철이 되어서 사무관까지 승진을 하려면 수십 년의 노력이 필요할 터이다. 엄청 노력으로 승승장구할 것을 각오했고, 그에 맞는 생활을 했을 것이다.

남과 똑같이 해서는 남 이상 될 수 없다는데, 비상한 노력이 없이 승진의 기회가 오겠는가. 안 되는 사람은 안 되는 길로만 나가고 하는 것은 없으면서 ‘왜’ 안 되는가만 따진다. 편히 가려고 할 뿐 아무 것도 하려고 하지 않는다. 당연히 될 것도 안 된다. 공무원을 합쳐서 60만을 넘는다는데, 승진이 쉬울 리가 있겠는가.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어려우니까 승진이 중요한 것이고 그 기쁨도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승진되는 맛에 공무원을 한다고 하는데 일견 맞는 말이다. 승진되는 맛이 없다면 무엇 하러 공무원을 택했겠는가.

길은 찾으면 보인다. 지척에 길이 있는데도 약간의 길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길은 저절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쉽게 길이 나타나서 편히 갈 수 있는 것을 바란다. 운동을 하지 않고 건강해지기만을 바라듯이 승진에 걸맞은 노력을 하지 않으면 당연하다.

걸어 다니는 자력 철이면 무슨 업무인들 못하겠는가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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