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紳士)는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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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국, 제주테크노파크 용암해수센터장/논설위원

영국 속담에 ‘A gentleman never heard the story.’란 말이 있다. 굳이 직역한다면, ‘신사는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정도이다. 이 표현의 의미는, 대화에 있어 설령 익히 아는 얘기일지라도 마치 처음 듣는 척을 하면서 상대방의 얘기를 경청하고 상대방을 배려해야 함을 역설하는 표현이다.

쉽게 볼 수 있는 상황으로 대화 중에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유머를 던졌는데, “아~ 그 얘기” 이런 반응이 나오면, 화자는 소위 김이 샐 것이다. 화자가 무안하지 않게, 설령 아는 이야기일지라도 몰랐던 얘기처럼 반응해 주는 것이 상대방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물론 어떤 이는 가식적인 행동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속담의 본 취지만으로 한정해 보고자 한다.

‘예의(禮儀)’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마땅히 지켜야 할 마음가짐과 몸가짐이라 정의하고 있다. ‘예의를 지켜라.’는 말을 어려서부터 수없이 들어왔다. 가정에서는 물론, 바른 생활, 도덕, 국민윤리 등의 교과목으로도 교육받고 학습해왔던 얘기다.

그럼에도 우리의 일상에서는 마땅히 지켜져야 하는 예의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무너지는 상황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사례를 일일이 나열하지 않더라도 예의가 경시되는 사회 분위기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오죽하면, 일간의 얘기 중에 ‘어른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말이다.

예의의 영역(領域)에서는 이를 성문화하거나 강제하지는 않는다. 앞서 정의에서 보듯, 너무도 마땅한 것이기에 이를 규정화하거나 반대급부를 부여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적 의무 여부를 따지거나, 논리 싸움을 이어가며 예의에 벗어나는 일을 서슴지 않는 이들이 있다.

더욱이 코로나19로 온 나라가 긴장하고 있는 현시점에서는 더더욱 용납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을 보고 있자니, 개탄스럽기 짝이 없다.

며칠 전 라디오에서 접한 내용이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격리된 일부 환자 중에, 방역과 간호에 여념이 없는 간호사에게 식사와 환경에 대한 갖은 불평불만을 퍼부어 대고, 심지어는 속옷 빨래를 요구하는 사례까지 있었다는 것이다.

방송을 듣고서는 그저 황당하다고 생각했지만, 곧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해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있는 관계자들에 대한 예의가 고작 그 수준이라니. 그들의 애절함에 귀 기울이고, 격려하고 칭찬해 주어야 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배워왔던 예의와 다름없지 않은가. 확산방지에 마음을 보태는 것, 서로를 위로하며 위기극복에 함께 하는 것, 다소의 불편함을 나누어 갖는 것. 그리 어렵지 않은 예의를 쉬이 찾아볼 수 있다 할 것이다.

여자든, 남자든, 노인이든, 어린이든, 그리고 종교인이든, 정치인이든, 일반 시민이든 우리는 예의의 한계에 대해서 사회적, 문화적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 어느 누구도 예의 앞에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작금의 현실 앞에서 ‘코로나19시대의 예의’는 더더욱 강한 요구에 봉착해 있는 것이다. 논리적 당위성이 보편적 예의를 넘어설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국인들처럼 소위 ‘알면서도 모른 척’까지 하면서 배려를 요구할 수는 없다지만, 비아냥을 넘어 무시와 경멸의 태도를 보이는 이들에게 진정으로 묻고 싶다. 무엇이 예의라 생각하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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