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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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미 수필가

국수掬水는 한 움큼 집어서 삶은 면을 물로 헹구어 건져 올린다고 하여 국수라 부른다. 이라고도 한다. 국수는 홀로 존재할 수 없는 음식이다. 흰색의 고고함이 독야청청 외로운 길이기에 시집보내듯 연지 곤지 찍어 고명을 올리면 어떠한 것과도 잘 어우러져 맛깔 난다.

수복이 길게 이어지라고 생일, 회갑, 잔칫상에 국수를 올렸다. 결혼 적령기엔 국수 언제 먹여 줄 건데?”라고 묻는 말에 먹지 않아도 국수가 물릴 정도였다. 추모하는 마음 오래 간직하라고 돌아가신 조상님 제사상에 올리기엔 긴 가닥의 국수만 한 게 없었다.

국수의 종류는 멸치국수, 콩국수, 잔치국수, 비빔국수, 칼국수, 차가운 국수인 냉면 등 다양하다. 향토 음식으로 제주도 고기국수, 강원도 메밀 막국수, 부산 밀면, 안동 건진국수, 옥천 생선국수, 포항 모리국수가 있다. 이 국수들을 언제 다 맛볼 수 있을까. 맛 기행이라도 떠나야 할지, 입맛을 다시는데 침이 고인다.

열 명이 먹을 수 있는 음식 한 명은 못 먹어도, 한 명이 먹을 수 있는 음식 열 명은 먹을 수 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찬장에 조금 남아있던 국수를 간식으로 삶아서 내놓았던 기억이 난다. 고구마나 감자를 쪄서 간식으로 먹던 시절, 국수를 먹는다는 건 지금 같으면 외식처럼 들뜬 날이었다.

우리 형제들이 빙 둘러앉아 머리를 부딪치며 젓가락질을 해대었다. 줄줄이 이어지는 국수 가닥을 잡아당기면서 놀이처럼 재미있었던 추억이 있다. 막내딸인 내가 젓가락질이 서툴렀지만, 국수량이 모자라도 면발이 길어서 적게 먹은 줄도 모른 채 배를 불렸던 게 국수다.

밥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평생 먹어도 물리지 않는 음식이라지만, 때론 간단히 맛있게 먹을 게 없을까, 무엇을 해 먹을까, 갈등할 때도 있다. 그 순간 떠오르는 게 국수다. 예전엔 하얀 띠를 두른 타원형의 국수가 주방 어디에든 부스러기를 흘려놓았다. 요즘은 녹차, , 뽕잎, 백련초, 해조류 등 다양한 재료로 비닐 포장에 보관도 편리하고, 천연재료로 물들여 갖가지 색깔을 입힌 국수가 시판된다.

시장 보러 나가려 부산 떨 필요도 없이 간단히 국수를 해 먹기로 한다. 끓는 물에 국수사리 빙 돌려서 풀어 넣고, 펄펄 끓으면 찬물 반 컵 부어 주고, 다시 끓어오르면 찬물 한 번 더 부어 준다. 국수 가닥이 투명해지면서 물 위로 떠오면 불을 끈다.

끓는 물 속에서 흐느적거리는 국수를 쳐다보노라면, 그 자유로운 유영에 엉킨 생각들이 돌아가면서 세파에 뒤틀린 심사가 풀리기도 한다. 숨을 몰아쉬며 참아내는 세상사가 얼마나 버거우냐며 완고하던 뼈대를 풀어헤치고 순리대로 살아라, 느슨하게 여유로워라, 유유자적이다.

물벼락에 면을 비벼 씻어주고 마지막에 얼음물로 수축시키면 면발이 탱탱하다. 헹구어 내다 몇 가닥 군입에 호로록 잡아당겨 먹으면 어떤 애피타이저보다도 일류이다.

국수사리 빙 돌려 사려 주고 넓은 국수 그릇에 올려놓으면, 가체 머리 같은 몸통이 언제 흐느적거렸던 적이 있었냐는 듯이 똬리를 틀고 있다. 저 부동자세를 긴 시간 놓아두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몸통이 불어서 비대해지기 전에 속히 먹어주어야만 하는 철칙이 있다.

감칠맛 나게 우려낸 국물 수북이 부어 주고, 고명을 올려놓으면 그 맵시에 매혹된다. 바로 이때가 아니면 국수가 맛있다 논하지 말지어다. 얼른 국물 먼저 들이켜 맛을 음미하고 젓가락으로 살살 돌려 국수사리, 양념, 고명을 섞어 준다. 입안으로 들어가는 국수의 면발은 탱글탱글 주르륵 끊기지 않고 레가토로 혓바닥을 연주한다. 국수 그릇 얼굴에 덮어쓰듯 고개 뒤로 젖히고, 국물 원 없이 들이켜고 나면 트림 소리 크게 마침표를 찍는다.

후다닥 서둘다 설익은 맛에 당황스러운 적이 있다. 화력을 조절하여 뭉근하게 우려내어야만 진국이 되는 것처럼, 욕심 한 줌마저도 같이 넣어 푹 끓여 버리면 삶은 진미가 우러나리라. 해이해진 삶은 그럭저럭 흘러간다. 잘 살아내는 이의 삶을 우연히 엿보곤 긴장도 되더이다. 탱글탱글한 면발처럼 활력있는 일상으로 회전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 중심의 삶에 갇혀 일방적인 일이 종종 있다. 정성을 들여 관계를 일일신日日新 해야만 하리라. 색색이 고명을 올리듯 어디에서나 누구와도 어우러지는 삶이 행복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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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별마리아 2020-09-17 17:27:07
국수를 이렇듯 맛깔스럽게 풀어 쓰시니
먹지도 않았는데
배도 부르고
맘도 부르네요.

송작가님
늘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