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위한 예의, 나를 위한 예의
남을 위한 예의, 나를 위한 예의
  • 제주일보
  • 승인 2020.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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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두흥, 수필가/논설위원

사람과의 관계에서 존경의 뜻을 표현하려면 예의를 지키는 건 기본이다.

겉모습으로 상대방의 성격을 가늠하기란 녹록지 않다. 말투나 몸가짐을 보고 그의 인품을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자녀의 품성도 그 부모에게서 나오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예부터 집안 본단 말이 전해 온다. 명예와 재물을 살피는 게 아니라 집안의 내력, 즉 성향을 본다는 말 아닌가. 예의는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른 마음과 맵시다.

요즘 젊은이들은 짧고 간단하며 직관적인 것을 즐긴다. 이러한 젊은이들의 취향을 부정적인 생각보다 긍정적인 사고로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세대 차를 보다 효율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고단한 산행길에서 낯선 이를 만나면 반갑다. 서로 “수고하십니다,”고 인사 나눌 때 쌓인 피로가 풀리는 듯 마음이 통하는 기분이 든다. 오르막이나 내리막에서 마주칠 때 내리막 사람이 양보하는 것이 예의다.

인터넷 카페 댓글에 대한 예의다. 어떤 이가 소중한 글을 올리면 댓글을 쓰는 건 좋은 일이다. 댓글 내용은 “좋은 정보 잘 봤어요,” 정중히 다는 이가 대부분이다. 정보는 일상 언어에서 전문 용어까지 다양한 뜻으로 사용된다. 컴퓨터의 정보 처리를 기반으로 한 자료가 두루 대두되고 있다. 읽어 본 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느낀 감정을 간단히 올리면 금상첨화다.

모임에서 경계해야 할 것 중 무의식적으로 한 얘기가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누군가 식사 중에 곰탕이 진짜 맛있다 하면 입맛에 안 맞더라도 그저 침묵하면 된다. 앞장서 “이건 소가 지나간 목욕탕이야.”하는 순간 밉상 되기 마련이다. 비판이나 지적하려다 참는 힘. 누구에게나 때때로 부러움과 찬사를 보내는 능력, 하찮은 작은 선물이라도 마련하는 정성을 갖춘다면 어른으로 존경받을 수 있다. 부모는 자식에게 올바른 예절 교육을 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웃어른께 인사함은 예의를 지킴이고 도리다. 다른 사람을 소중히 대하듯 전화할 때도 마찬가지다. 사고의 대 전환과 내가 먼저 자세를 낮추고 배려하는 마음의 자세가 따라야 한다.

사무엘 울만은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 그 탁월한 정신력을 뜻하나니, 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 예순 살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네.’라고 말했다. 그러니 어른들도 너무 움츠러들지 말고 자신감을 가지고, 미래를 활기차게 개척해 나아갈 일이다. 어른이 지켜야 할 진정한 가치를 깊이 고민하고, 사회변화에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는데 망설이지 않아야 한다.

노인들은 젊은이들이 겪어 보지 않은 일을 경험했다. 삶에 대해 더 깊이, 세세히 겪은 세대임을 인정해야 한다. 질병, 실패, 위험, 사기 같은 갖가지 힘든 삶을 살았다. 어쩌면 젊은이들이 겪어 보지 않은 훨씬 더 큰 어려운 상황을 겪어왔다. 직접 초근목피를 경험한 세대임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노인 한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 버린 것과 같다.’고 했는지도 모른다.

젊은이에게는 항상 격려와 위로를 통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열린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 살기 좋은 세상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지리라. 어른은 스스로 엄격해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 겸손해야 한다. 철없는 젊은이의 미숙을 탓하기보다 가능성을 존중하고, 불쑥 튀어나오는 실수를 삶의 한 과정으로 바라보는 미덕을 어른들이 가졌으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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