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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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집이 해묵어 낡으면 수리한다. 기계가 녹슬거나 고장 나도 수리해 쓴다. 특히 집수리가 커지면서 반지르르하게 고치는 게 요즘 많이 하는 리모델링이다. 기계 수리라면 몰라도 집수리란 말은 별로 쓰지 않게 돼 간다. 시대의 물결을 타고 변화에 예민한 게 언어다. 언중(言衆)의 약속이라 말엔 그 시대가 고스란히 투영된다.

한데 옛일이 돼 버려선지 풍요로운 시절에 옷수선이란 말도 별로 쓰이지 않는다. 옷이 헐거나 허름한 것을 손봐 고치는 것인데, 요즘 세상에 옷을 수선해 입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을 것 아닌가.

오랜만에 옷수선이란 말을 들추니, 옛일이 떠오른다.

어릴 적에 입던 옷은 대부분 무명옷이었다. 무명은 천 짜임이 워낙 거칠고 성겨 촘촘하거나 단단하지 못했다. 그것을 어머니가 마름질해 손바느질을 했다. 대낮에 옷 지을 겨를이 있었으랴. 행여 비라도 오지 않으면 밭일하고 돌아와 저녁밥 두세 술 뜨는 둥 마는 둥 무영천을 내놓는다. 외풍에 가물거리는 푸른 등잔불 아래 어머니 거친 손이 한 땀 한 땀 어린 아들의 옷을 뜨셨다. 오일장에서 사 온 검은 물감을 들여 볕에 말리면 완성이다.

윗옷 양쪽엔 천을 대어 붙였지만 손이 많이 가던지 바지엔 아예 생략돼 호주머니가 없던 옷. 살을 에는 한겨울 바람에 손이 바지를 더듬어도 넣을 호주머니가 없었다. 겨우내 손등이 부르틀 수밖에.

그 옷도 몇 달 안 가 닳아 째지고 해졌다. 바지 엉덩이 부분이 맨 먼저 구멍이 났다. 그러면 어머니 손이 터진 부분에 군것을 덧대 돌아가면서 듬성듬성 바느질해 꿰맸다. 옷을 지었던 어머니 손이 수선하는 손이 돼 있었다. 뒷날 동살 틀 무렵 밭에 나가야 하니 그 한 땀이 힘겨웠으리라.

1970년대까지만 해도 옷을 수선해 입는 게 일상 속에 자리 잡았던 것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길에 나가면 옷수선집이 눈에 띌 정도였다. 그런데도 좀체 밖에 맡기지 않고 손수 수선하던 아내의 모습이 추억의 공간에 아스라이 얼비쳐 감회 유별하다. 집에 재봉틀이 있어 몫을 톡톡히 했다.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짜깁기’라는 게 있었다. 닳아 터진 부분에 천을 대어 올올이 맞춰 놓으면 솜씨에 따라 흠나지 않았다. 수선의 손길은 가뜩이나 주름진 가계에 작지 않은 도움이 됐던 건 말할 게 없다. ‘옷수선 합니다’는 간판 아래 유리창엔 으레 ‘짜깁기’란 말이 끼어 있었다. 방언인 ‘짜집기’란 표기도 만만찮게 등장해 오류 운운하던 일이 어제의 일로 되살아나 웃음이 난다.

연동과 노형동 경계일까. 운동 삼아 걷는데, 눈에 언뜻 들어오는 간판, ‘옷수선’. 눈을 의심했다. 여유로운 삶을 누리는 세상에 옷수선이라니. 지하상가나 세탁소면 모를까 대로변에 자리 잡은 자그만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재봉틀을 받아 앉아 부지런히 돌리고 있다. 유리창에 수선하는 품목들이 나열돼 있다. 양장, 양복, 학생복, 가방, 무스탕. 그 아주머니 옆 모습에 눈을 보내다 돌아섰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도 모를 것처럼 일에 집중하는 모습이라 콧마루가 시큰하다. 옛날 내 무명옷을 뜨던 어머니 모습이 포개진 탓일까.

상가도 아닌데, 옷수선 가게를 열어 제대로 꾸려 갈까는, 천장이 안 보이게 걸려 있는 수많은 옷이 답이었다. 그만큼 아주머니 솜씨가 꼼꼼할 것이다. 걷기에 나설 때마다 옷수선 가게 앞을 지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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