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민주화 운동의 산증인…4선 의원으로도 큰 업적 남겨
(1)민주화 운동의 산증인…4선 의원으로도 큰 업적 남겨
  • 김승종 기자
  • 승인 2020.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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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선 개헌 반대 주도, 민청학련 사건으로 옥고
국회서 4·3특별법 개정, 제주특별법 제정 등 앞장
국가와 제주 발전 위해 주어진 역할 다할 각오

강창일 전 국회의원은 민주화 운동의 역사적 산증인 중 한 사람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3선 개헌 반대 시위를 주도했고, 대학생 때는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으로 옥고를 치러 민주화유공자로 인정받았다. 일본 동경대 유학시절에는 19874·13 호헌 조치에 반발, 일본 유학생들을 모아 반대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그는 항상 민주화 투쟁의 전면에 서왔다. 배재대 교수로 재직하며 역사학자의 길을 걷던 강 전 의원은 시대의 부름에 따라 자의반 타의반으로 정치인이 됐지만 정치 분야에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출생과 성장

강창일 전 의원은 1952년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에서 10남매 중 8번째로 태어났다.

부모님이 일제 강점기 때 결혼을 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생활을 하다 광복 후 귀향했기 때문에 위로 5남매는 일본에서 태어났고, 강 전 의원을 비롯한 밑으로 5남매는 고산에서 출생했다.

집안은 비교적 부유한 편이었으나 사고로 자식 2명을 먼저 저세상으로 보낸 충격과 슬픔에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가세도 급격히 기울었다. 어머니 혼자 집안을 이끌며 사업을 확장했는데 제주시에 건물을 지으면서 사채를 빌려 쓴 것이 화근이었다.

그 후 어머니는 제주시에서 셋방살이를 하며 보따리 장사로 자식들을 뒷바라지 했다고 한다.

학창 생활

강 전 의원은 초등학교 교사였던 큰 형의 권유로 제주시에 있는 오현중으로 진학을 했다.

가정 형편 때문에 서울 명문고로 진학할 사정이 못 되자 잠시 방황도 했지만 강 전 의원은 불교학생회 활동을 통해 마음을 추스렸다.

강 전 의원은 장학생으로 오현고에 진학하면서 서울대 법대 졸업 후 변호사가 돼서 우리 사회에 좋은 일을 많이 하다가 나중에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을 꿨다.

그 때부터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고, 박정희 군사독재에 대한 저항 의식도 점차 높아졌다. 결국 강 전 의원은 고3이던 1969919일 금요일 전체조회에서 ‘3선 개헌 반대시위를 주도하게 되고, 이 사건으로 정학 처분과 함께 기소까지 당했지만 훗날 민주화유공자로 인정받는 계기가 된다.

서울대 진학과 민청학련 사건

강 전 의원은 서울대 법대 입학시험에서 처음 고배를 마시고 큰 좌절감을 맛봐야 했다.

그때 불현듯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면서 절에서 4개월 정도 지내며 승려가 되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한 스님의 도움으로 마음을 다잡은 그는 재수를 한 후 서울대 역사학과에 진학한다. 강 전 의원은 인간의 삶과 근원에 대한 깊은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역사학과를 택하게 된 것 같다고 회고했다. 대학생활을 시작하며 천관우 선생을 본보기로 삼아 역사학자로 꿈을 바꾸지만 그의 학문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비상군법회의 1심에서 징역 12, 고등군법회의 2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르다 이듬해 석방됐으나 서울대 복학은 허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로 인해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에서 한문 공부를 하다가 아세아문화사 견습사원으로 입사, 6년 남짓 일을 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19803월 서울대에 복학한 그는 6월 졸업논문 심사를 통과했고 마침내 8월 말에 입학 10년 만에 졸업을 하게 됐다.

국회 비서관 생활과 일본 유학

1980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고 대학생 과외 금지조치가 이뤄지자 대학생들이 등록금과 생활비 마련이 막막해졌다.

이 때 서울지검 특수부 검사였던 현경대 전 의원을 만나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해 줄 수 없느냐고 부탁한 것이 인연이 돼 11대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현경대 후보를 도와 당선시켰다. 그 후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고 있을 때 현경대 전 의원이 비서관으로 일해 줄 것을 제안, 국회도 배우고 대학원비도 마련할 겸 승낙을 했다.

그런데 진짜 야당을 하겠다던 현 전 의원이 여당인 민정당에 입당하자, 이에 실망한 강 전 의원은 1982년부터 일본 유학을 준비했고, 그해 12월 비서관 직을 그만둔 후 일본으로 건너가 19844월 동경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하게 된다.

4·3 연구소 창설

강 전 의원은 동경대 유학생 시절인 198843일 동경과 서울에서 제주 4·3사건에 대한 공식적인 첫 토론회를 개최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제주 4·3 사건에 대한 조명이 시작된 역사적 순간이었다일본과 한국의 여러 언론들도 주목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 해 여름, 방학을 맞아 한국에 온 강 전 의원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받은 연구비 200만원을 내놓겠다4·3연구소 창설을 지인들에게 제안한다.

이듬해인 1989년 제주 4·3연구소를 포함해 도내 11개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사월제 공동준비위원회를 결성, 공식적으로 첫 4·3 추모행사인 제41주기 4·3 추모제를 개최했고, 제주 4·3연구소는 1989510일 정식으로 개소식을 가졌다. 강 전 의원은 19952월부터 2003년 말까지 소장을 맡았고 그 후 2004년 국회의원 출마 전까지는 이사장을 역임했다.

교수에서 정치인으로 변신

19912월 동경대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강 전 의원은 지인으로부터 동경대 선배였던 이성근 배재대 총장을 소개 받은 후 배재대에 교수 지원서를 제출, 그해 가을에 교수로 채용됐다. 교수로 재직 중 19929월 다리에 이상이 있음을 느껴 정밀검사를 받은 결과 척수 신경 속에 종양이 있어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강 전 의원이 다리가 불편한 것은 이 때문이다.

동경대 문학부 객원연구원으로 일본에 건너갔던 강 전 의원은 19982월 귀국 후 배재대에 복직, 강의를 하면서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 시작했고 2003년 동경대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른바 꼬마 민주당의 이철 원내총무로부터 199214대 총선 출마 권유를 받기도 했던 강 전 의원은 2002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선 정동영 의원의 부탁으로 정치판에 발을 들여 놓게 된다. 16대 국회의원 북제주군 보궐선거 때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후보까지 출마를 권유했으나 학자의 길을 가겠다며 사양했다.

그런데 20041월 정동영 열린우리당 당의장이 강 전 의원을 제주도당 위원장 임명했고, 그는 그해 417대 총선에 출마해 당시 5선인 현경대 의원을 누르고 당선됐다.

그 후 20대 총선까지 4번 연속 제주시 갑 선거구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는 영광을 안았다.

국회의원 4선을 연임하면서 성과와 아쉬움

강 전 의원은 16년 동안 국회의원을 4선 연임하면서 가장 성과로는 제주 4·3 특별법개정을 꼽았다. 4·3 희생자에 수형자를 포함시켜 명예를 회복시키고 4·3 평화재단도 만들 수 있었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리고 제주특별자치도법 제정, 애월항에 액화천연가스(LNG) 기지를 완공하고 제주에 LNG가 공급될 수 있도록 한 것 등을 우선 열거했다.

그리고 제주지방경찰청과 제주지방해양경찰청의 치안감 시대를 열었고 일반 하위직 경찰관들이 경감까지 자동 승진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한 점 등이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2 어승생 저수지를 조성, 제주 전역의 광역상수도 문제를 해결한 것도 도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고 자평했다.

그는 이어 “4선 국회의원 임기 동안 공약 대부분 착실히 이행했다고 자부한다면서도 지난 20대 국회 때 야당의 반대로 제주 4·3특별법의 완전한 개정을 이루지 못한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밝혔다.

향후 인생 계획과 가족 관계

강 전 의원은 스스로 21대 총선 불출마를 결정, 국회를 떠났지만 요즘이 더 바쁘다고 한다.

그는 제주의 20, 30년 후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평화와 상생 번영 실현, 환경 보전 등을 통해 제주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설립한 제주와 미래연구원의 연구 활동 지원에 앞장설 계획이다.

이와 함께 몽양 여운형 기념사업회 이사장, 한일의원연맹 명예회장, 국회 정각회 명예회장, 더불어민주당 역사와정의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평화 정신 계승과 역사에 대한 올바른 가치 정립, 한일 관계 문제 해결 등을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할 계획이다.

한편 강 전 의원의 가족으로는 대학시절 불교수련회 때 만난 부인 장용선씨(66·교사 퇴임)11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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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영 2020-09-22 01:10:53
강전의원님의 인생 여정 속
제주와 제주도민을 위해 쏟았던 헌신과
국가적으로는 한일 국제관계 전문가로서 혁혁한 활동으로 이루신 큰 역할에 감사를 보내드립니다.
늘 건강하셔서 새로 맡으신 직분 잘 감당하시길,
활발하신 행보도 주욱 이어가시길 기원합니다.

게메이 2020-09-21 22:02:54
4선 하는 동언 무시거 해싱고.
기자도 와이로 먹언디야.
제주도민 대부분은 저거 누개니 헐거여.
김승종 기자
느 지켜보머,
아니면 이 기사 노려불라게

이재섭 2020-09-21 09:58:16
학교에 근무하고있는터라 코로나 19로 만나뵙지는 못했지만 이사장님 삶을 잘 읽었습니다.
감사 합니다.
몽양 여운형 기념 사업회 이사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