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는 천하의 근본…치국의 기본 개념으로 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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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고병기 농협중앙회 상호금융 상무
제주본부장 재직 때 감귤의무자조금 도입 등 추진
전국 최초 농기계플랫폼 운영, 농협수련원 개원도
“제주, 스마트·치유·경관 농업으로 부가가치 높여야”

 

고병기 농협중앙회 상호금융 상무는 농사가 천하의 근본이라는 농자천하지대본 (農者天下之大本)’을 강조하는 농협인이다.

그는 인류가 앞으로 살아나가는 데 있어서 아직까지 농업을 대체할만한 것이 없고, 오히려 농업의 소중함이 더 커지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따라서 고 상무는 일선 농업 현장 방문과 강연 등을 통해 청년 농업인들의 육성과 미래 농업 발굴과 혁신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다

고병기 상무는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님 밑에서 4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지금은 위미리가 감귤주산지이지만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주로 밭농사를 지었다.

그의 부모님도 밭농사를 짓다가 감귤 농사로 전환했다.

감귤 농사로 소득은 조금 나아졌지만 농사일이 힘들고 고된 것은 마찬가지였다.

고 상무는 농사일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주시내에 있는 오현고등학교로 진학했다며 당시를 회상하며 웃음을 지었다.

대학 생활과 농협 입사 배경

고 상무는 부산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사회학이 적성에 맞지는 않았지만 경제학, 행정학, 법학, 정치학 등 사회과학 과목을 전공에 관계없이 강의를 들으며 두루 공부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후 집안 형편을 고려해 취업을 하겠다고 진로를 결정했으나 1986~1987년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다 보니 시위 현장이나 각종 토론회에도 자주 참여를 했다. 자취집에서 당시 필독서였던 사회과학 서적들을 모조리 압수당한 경험도 있다.

그는 “19876·10 항쟁과 6·29 선언을 거치며 헌법 개정이 이뤄지고 대통령 직접선거가 실시됐으나 정권교체는 이뤄지지 않아 마음이 무겁고 답답했으나 취업을 해야만 하는 형편 때문에 방황할 틈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열심히 취업 준비를 한 덕택에 국내 굴지의 대기업과 농협중앙회 두 군데에 합격하게 된 그는 자신이 농촌 출신이고 농협 이미지가 익숙한 때문에 농협중앙회를 선택하게 됐다고 한다.

농협인으로 성장 과정

고 상무는 198831일 경남 진해에서 평범한 은행 업무로 농협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2년 후 그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농민신문 기자로 파견된 것이다.

축산담당 기자 생활을 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당시 선진국형 육계 계열화 육성 사업을 취재하면서 육계 사업에 뛰어든 33살 청년 김홍국씨를 알게 된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현재 국내 25위 재벌기업으로 성장한 하림그룹의 회장이다.

고 상무는 그 취재를 계기로 세상은 도전하는 자의 것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됐다고 했다.그는 또 농민신문사에 글쓰기와 홍보 감각을 배운 게 30년 넘는 농협 생활에 큰 도움이 됐다비록 2년에 그쳤지만 소중한 기자 경험이었다고 밝혔다.

지점장, 본부 부장, 지역본부장 등을 거치며 인사말이나 언론기고 등을 쓸 때 대부분 직접 쓰게 된 것도 신문사 경험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는 김영삼 문민정부 당시인 1994년에는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의 교환근무제로 인해 제주도청에 4주간 파견 근무도 했다.

그 때 신구범 제주도지사가 지하수 상품화, 산지공판장, 감귤생산조정제, FCG(Fresh air, Clean water, Green fields)인증 등 제주 발전과 농정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을 보면서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했다.

그 후 그는 제주대 행정대학원에서 석사, 세종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주지역본부장 재직 시 주요 성과

고 상무는 농협 직원들의 꿈은 경험을 잘 쌓아서 사무소장이 되는 것인데 자신은 운이 좋아서 고향에서 지역본부장 직을 2년간 수행할 수 있었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가 지역본부장으로 취임한 이후 선정한 최우선 당면과제는 당시 4800만원 수준이었던 제주지역 농가소득을 5000만원까지 높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제주특별자치도와 농정발전협의회를 구성하고, 지역본부 및 지역 농·축협별로 이행 과제를 발굴했다. 홈쇼핑 등을 통한 판매망도 확대했고, 연합판매조직인 제주농협조합 공동사업법인의 매출액도 2000억원대로 늘렸다.

이런 노력이 더해지며 2017년 기준 제주지역 농가소득은 광역자치단체로는 전국 처음으로 5000만원을 넘어섰다.

또한 농협중앙회 본부 부장시절 원예작물 중 최초로 인삼의무자조금제도를 도입한 경험을 살려 제주감귤의무자조금 도입도 강력하게 추진했다

제주도의 지원을 받아 농업인력지원센터를 설치 운영했으며, 강원농협과 협약을 맺어 감귤 수확기 국민수확단을 운영해 큰 호응을 받기도 했다.

그는 특히 제주지역 농가소득 5000만원 돌파를 계기로 제주도와 농협이 200억원의 기금을 공동으로 조성해 전국 최초로 농기계플랫폼 사업을 추진한 것은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고 상무는 이 밖에도 지역본부장으로 재직하면서 계통소식시 상방&우뚱을 발간했으며 농협인들의 활동상을 담은 협동조합 사람들도 출간했다.

표선면 세화리에 농협수련원을 문 열었고, 전국 처음으로 청년농업인아카데미를 개설, 매년 40여 명의 청년농업인들에게 미래 농업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갖도록 했으며 제주시와 공동으로 농업성공대학도 운영했다.

제주지역본부장 재직 시 아쉬운 점

고 상무는 제주지역본부장으로 재임 중에 하고 싶었던 일 중에 상황이 여의치 못해 성사시키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털어놨다.

그는 계통 구매 농자재의 수요가 집중되면서 원가를 낮추기 위해 공동구매 법인을 만들고 싶었으나 적극 추진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한 도매시장 현대화, 소비지의 소포장 요구, 그리고 해상물류비 국비 반영 실패로 제주지역 유통비용 절감 노력이 반감된 것에 대해서는 자책감마저 든다고 말했다.

미래 농업의 가야할 방향

고 상무는 앞으로 코로나19와 디지털 혁명 등으로 누구도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뉴 애브노멀(New Abnormal)'시대로 접어들다 보니 과거보다 위험이 커졌지만 그만큼 기회도 크다관행 농업을 과감히 버리고 과학적 농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청년농업인 육성에 국가와 지자체가 나서야 된다지금도 지원 정책이 있지만 농지은행의 개선, 청년농업인 기본소득 지원과 같은 파격적인 정책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농업과 농촌을 그 자체로만 볼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지속가능성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 민주주의와 인권 차원으로 의미를 확대하고 치국의 기본 개념으로 봤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미래 농업의 과제도 제시했다. “우리나라는 단위면적당 질소, 인산 및 가축집약도와 농약사용량이 OECD국가 중 최고 수준이라며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스마트 농업으로 비료·농약 사용량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주 농업의 미래는

고 상무는 그동안 제주농업인들이 혁신을 많이 해왔지만 기후변화로 인해 차별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진단하고 제주는 밭농업 중심인 만큼 밭농업 기계화와 함께 스마트 농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품목 또는 품종갱신 등을 통한 제품혁신과 디지털 기술 도입과 기계화, 화상경매 등을 통한 프로세스 혁신, 6차산업화와 치유 농업, 경관 농업 등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이고 혁신 잠재력을 키워 나갈 것을 주문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지역브랜드에 따라 같은 품질의 농산물도 가격 차이가 있는 만큼 지역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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