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의 한가위만 같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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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호 수필가

경자년(更子年)은 정녕 고난의 시기인가? 새해 벽두부터 미증유의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도무지 그칠 기미가 없는가 하면, 전례 없이 지루한 장마와 무더위가 정신을 혼미케 하더니, 불청객 같은 태풍까지 수차례 찾아드니 그저 맥이 풀릴 지경이다. 인간은 자연을 잠시 이용할 뿐, 막강한 대자연의 위력 앞에서는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음을 실감케 한다.

그래서 그런가. 유난히 탐스럽게 여물어 살포시 내려앉는 달빛마저 사뭇 애처로워 보인다. 한가위가 도래하였음이다. 그러고 보면 풍성한 보름달은 한가위와 천생연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이즈음의 보름달은 크기도 크기려니와 또렷하면서도 온화한 파스텔 톤의 황금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현대 도시인에게 어디 카타르시스가 따로 있겠는가. 팍팍한 도심의 일상에 묻혀 지내다가 우연히 바라본 가을 밤하늘. 헤아리기조차 버거운 별들의 호위를 받으며 미소를 짓는 보름달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긴장이 해소되고 상쾌한 기분이 들면서 마음이 정화(淨化)되지 않는가.

한가위 무렵의 청명한 날씨와 풍성한 수확. 시대를 거슬러 선인들께서도 손꼽아 기다리시던 호시절임이 분명하다. 그 심정을 조선 순조 때의 문인 김매순(金邁淳)열양세시기(冽陽歲時記)’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 같기만을 바란다.(加也勿減也勿但願長似嘉俳日)”라고 기록하였다. 가을걷이의 풍요 속에 벌초와 성묘를 하고, 일가친지들이 모여 맛난 음식을 먹고 즐거운 놀이를 하며 기쁨을 나눌 수 있으니 더 바랄 게 무에 있었겠는가.

그런데 이즈음 마스크 너머로 펼쳐지는 세상은 풍요와 기쁨보다는 장기간의 거리 두기로 인한 피로감 상승과 은근한 두려움에 잠겨 한없이 침잠하는 분위기이다. 문득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혼란스런 모습이 떠올라 더욱 우울감에 빠져들게 한다. 호환 마마가 무섭다지만 이보다 더하였으랴. 불현듯 나오는 기침 소리에 놀라 주위의 시선이 한꺼번에 쏠리는 현실. 평범한 일상이 꿈처럼 느껴지는 요즘 거리는 2m 마음은 0m”라지만, 정작 서로 마주보며 담소를 나누는 것조차 거리낌으로 다가오는 실상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산고를 겪어야 새 생명이 태어나고, 꽃샘추위를 겪어야 봄이 오며, 어둠이 지나야 새벽이 온다.”고 한 백범 선생의 말씀처럼, 좀 더 인내하고 어느 정도의 희생과 자제 그리고 철저한 방역을 통해 이 고난의 시기를 슬기롭게 극복해야만 다시 활기찬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으리라.

각자도생(各自圖生)인가. 조촐히 차례를 지내야 한다는 씁쓸함에 예년의 한가위만 같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더하여 무언의 합장(合掌)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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