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엄마가 울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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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철, 제주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논설위원

오래전 어느 날, 형님께서 해병대장교로 입대하셨다. 자식을 군에 떠나보내신 어머님은 형님 방에 앉아 옷을 정리하며 하염없이 울고 계셨다. “주인은 어디 가고 옷만 남았구나….” 아마도 어머님께서는 이유도 없이 자식에게 미안해하며, 건강하게 다시 품으로 돌아오기를 빌고 또 비셨으리라.

또 몇 해가 지나 다른 형님께서 공군장교로 입대하셨다. 어느 일요일 어머님께서는 새벽부터 일어나 나를 깨워 함께 기차를 타고 훈련소에 도착하여 면회를 신청하셨다. 그러나 형님을 위시한 훈련생도들은 모두 외출을 떠난 뒤인지라, 온종일 훈련소 주위를 맴돌며 기다렸다. 저녁이 되니, 곳곳에서 몇 무리의 훈련생도들이 삼삼오오 발맞추어 행진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많은 무리들이 들어왔지만, 모두 머리를 깎았고, 오랜 훈련으로 시꺼멓게 그을렸으며, 살이 쏙 빠져서인지, 내 눈에는 모두 똑같아 보였지만, 어머님은 무리 속에서 당신의 자식을 한눈에 알아보시고 반가워서 소리치셨다. “**야!” 그러나 몇 개월 만에 본 그리운 자식은 대열에서 이탈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눈조차 옆으로 돌려 어머님을 뵙지 못하고 대열과 함께 부대 안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어머님은 털썩 주저앉아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셨고, 나도 덩달아 어머님을 붙들고 울면서, 괜히 정문 앞을 지키는 보초만 원망스럽게 쳐다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어머님께서 그제야 준비해갔으나, 먹이지 못한 음식물을 나에게 먹으라고 하셨지만 당신은 잡숫지 못하셨다. 자식은 먹이지 못하고 당신 입에 넣자니, 그 음식이 모래를 씹는 기분이지 않으셨을까.

또 세월이 흘려 이번에는 내가 병사로 입대하였다, 훈련을 마치고 더블백 하나를 메고, 군용트럭 뒤칸에 올라 경상북도 울진의 어느 부대에 배치되었다. 내가 살 곳을 찾아가면서도 나의 의지는 없다. 그냥 종이에 이름이 쓰인 명령서 하나 들고, 잔뜩 긴장하여 도착한 낯선 곳에서 나의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바람이 불어 파도가 집채만 하던 어느 추운 겨울날, 어머님께서는 단 하룻밤을 자식과 함께 지내시겠다고 10시간이 넘는 먼 곳을 달려오셨다. 그때 난 마침 찬물에 손을 담그고 선임병사들의 옷을 빨고 있었던지라, 혹시나 어머님께서 아실까, 얼른 옷을 한 곳에 숨기고, 어머님께서 정문에서 연병장을 가로 질러 들어오실 때까지, 부르튼 손을 필사적으로 말리고, 어머님을 뵐 때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였지만, 어머님께서 어찌 자식의 행동거지를 모르셨을까. 아마도 예전에 형님들이 입대하였을 때 그러하셨듯이, 고생하는 자식을 홀로 두고 떠나실 때는 하염없이 우셨으리라.

대한민국의 모든 아들의 어머님이 겪는 아픔이다. 당신들만 자식의 부모인 것이 아니다.

나는 딸만 둘이다. 다행히 자식을 군에 보내는 아픔은 겪지 않았지만, 때로 아이들이 실패하여 울고 있을 때면, 나도 함께 몇 날 며칠을 잠 못 이루고, 밥맛 또한 잃고 앓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다 어느 때 제 뜻을 이룬 날이면, 나 역시 “잘했다. 장하다”라고 말하며, 함께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당신들은 잘난 부모라 좋겠소. 나는 권력도 돈도 없어 자식을 경쟁의 현장으로 몰아 고생시킨 죄가 커 괴롭답니다. 잘난 부모 만난 자식들아! 너희들은 좋았겠다. 이제까지 고생하지 않았으니, 지금부터는 큰집도 구경하고 고생도 해야지, 그래야 공정한 것 아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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