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Apolog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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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관훈,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논설위원

요즘 보면, 언론에 많이 노출된 사람들이 어쩌다 한번 세상에 미운 털이 박히면 좀체 헤어나지 못한다. 공인(公人)이면 더욱 그렇다. 한 번 실수가 또 다른 실수를 낳는다. 항변할 말도 많고 당연 억울하지만 회복하기 힘들다. 변명하면 할수록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이럴 때를 예상해 테스형님께서 말씀하셨다. 살면서 비난을 피할 수 있는 가장 쉽고 훌륭한 방법은 사람들을 억압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이 가능한 한 선(善)한 사람이 되는 거라고.

대학원 첫 학기 때다. 안 되는 머리로 며칠 동안 잠 설쳐가며 발표 준비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 15분 정도 내 발표를 들으시더니, “도대체 준비를 어떻게 한 거야, 바보 같은 놈”하며 강의실을 나가 버리셨다. 황당했다. 그날 같이 강의 수강하던 선배가 <소크라테스의 변명(Apologia Sokratous)>을 권해 주셨다. 학부 때 읽어봤다 했더니 이번엔 좀 다를 거라 조언 하시면서.

주위에선 이미 내가 바보인 줄 다 알고 있는데 정작 나는 모르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무지한지 알지 못했다. 이성과 용기의 차이도 모른 채 ‘모른다는 걸 모르는’, ‘모르는 걸 안다’고 착각하는 바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아는 척 하는 진짜 바보였다. 아쉽게도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당시 강렬했던 테스형님의 가르침은 살면서 점점 무뎌지고 화석화되었다. 얼마 전 예인(藝人) 나훈아가 테스형님을 노래했다. 불안했던 이번 한가위 우리의 심금을 흔들었다. 이런 연유로 다시 읽었다. 이 책은 언제 읽느냐에 따라 소감이 다르다고 한다. 역시 세월의 길이만큼 달랐다.

소크라테스는 신이 허락한 한도에서 지혜롭다 믿는다. 지혜롭다는 건 자신이 알지 못한다는 걸 안다는 거다. 어떤 일을 할 때 오직 올바른 행위를 하느냐 나쁜 행위를 하느냐, 선한 인간이 할 일을 하느냐 만을 고려해야 한다. 살면서 자주 되새겨야 할 자경문(自警文)이다.

소크라테스는 지혜롭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가 스스로 지혜롭다 생각하지만 실은 아니라는 걸 그들에게 보여주려 했다. 이러한 일들로 인해 그 지혜로운 사람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샀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주장이나 대세에 거스르면 불편한 감정을 느끼며 배척하기 때문이다. 조직이나 사회 발전을 위해 반대를 통한 균형이 필요하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다. 자기 자신에게만 지나치게 관대(寬大)할 뿐이다.

학교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서 일하며 자기가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지식인이라 스스로를 세뇌 시킨다. 항상 마지막에 결론 내리려 하고 자기만 균형 감각이 있다 착각한다. 깊은 성찰 없이 약간의 배움 가지고 전문가 행세하며 진실인 냥 살아가는 불안한 ‘꼰대’, 그러면서 반성에는 인색하다. 죽음을 불사하며 소크라테스가 지키고자 했던 부끄러움, 그 부끄러움을 애써 무시하며 대강 살아간다. 어쩌다 불의(不義)를 봐도 못 본 체 한다. 평소 공인인척 행세하다 정의 앞에 사인(私人)이 된다. 심지어 알면서도 실천엔 주춤한다. 다 그렇다는 건 아니고 솔직히 나는 그런 거 같다.

“그래, 나 바보야, 뭐 어쩌라고, 나처럼 자기가 바보인지 모르는 사람이 어디 한 둘 인가” 합리화하며 책을 덮었다. 세월이 흐른 후 다시 읽으면 어떤 느낌일까. 보나 마나 또 구차한 변명으로 가득 찬 참회록(懺悔錄)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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