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72년 만에 국가가 '피고'로 법정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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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수형인과 유족 39명 국가 배상청구 첫 변론 열려...범죄경력에 자녀들 취업 기회 박탈 등 피해 호소
4·3생존수형인과 유족, 변호인단이 29일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국가 배상 소송과 관련, 기자회견을 열었다.
4·3생존수형인과 유족, 변호인단이 29일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국가 배상 소송과 관련, 기자회견을 열었다.

제주4·3이 발생한지 72년 만에 처음으로 국가가 피고가 돼 4·3수형인과 유족들이 책임을 묻게 됐다.

제주지방법원 제2민사부(이규훈 부장판사)는 29일 생존수형인과 유족 등 39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103억원대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과 관련, 첫 변론기일을 열었다.

생존수형인들은 전과자로 낙인이 찍혀 제대로 된 직업을 갖지 못했고, 그 자녀들은 연좌제로 취업을 못하는 등 대를 이어 피해를 당하면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생존수형인 양근방씨(88·징역 7년)는 “학교에서 1등을 했던 큰 아들이 제약회사에 입사했는데 내 범죄경력 때문에 경찰이 계속 찾아가서 결국 회사를 그만뒀다. 이 충격으로 아들은 변변한 직업을 갖지 못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부원휴씨(92·징역 1년)는 “수의사가 되기 위해 제주농업학교에 갔지만, 형무소로 끌려가면서 꿈을 이루지 못했다. 전과기록으로 임시직을 전전해야 했다”고 회고했다.

이들은 본인뿐만 아니라 자녀들도 ‘폭도 가족’으로 몰리면서 사회에서 냉대를 받았고, 공공기관은 물론 민간회사의 취업 기회도 박탈당했다고 호소했다. 또 구금과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받았다고 밝혔다.

반면, 국가 소송을 수행하는 정부법무공단 변호인은 원고 측이 제시한 증거(진술)만으로는 피해 사실에 대한 불법성이 충분히 입증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이어 민사소송(국가 배상소송 5년)의 소멸시효가 이미 완성됐다고 주장했다. 또 103억원에 달하는 위자료(손해배상금)는 과도하다고 맞섰다.

이에 유족 측 김세은 변호사는 “간첩 조작사건과 관련, 가족들이 입은 피해에 대해 서면 증거가 아닌 진술만으로도 재판부가 인정을 해줬다”며 “대법 판례를 보면 재심을 통해 공소기각 판결이 확정된 날로부터 3년 내에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며 정부 측 주장을 반박했다.

김 변호사는 “한국전쟁 직후 민간인 희생에 대한 과거사 사건에서 객관적인 증거 없이 당사자 진술을 토대로 사실 관계를 인정한 사례가 많다. 국가가 먼저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임재성 변호사는 “형사사건인 재심에서는 수형인들이 피고였지만, 민사사건인 국가 배상 소송은 국가가 피고가 됐다. 비록 피해 보상은 금액으로 한정됐지만, 많은 도민에게 피해를 준 군사재판의 불법성에 대해 국가는 답변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국가 배상 청구에 대해 치열한 법정 공방이 전개된 가운데 재판부는 원고 개별적으로 구체적인 입증 내용이 필요하고, 피해사실 진술 외에 증거와 서증목록을 제출할 것을 원고 측에 요구했다.

이에 원고 측 변호인은 직장 해고 사실과 학업 중단 기록, 병원 진료 등 증거 확보에 나서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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