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가을, 노년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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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옥,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논설위원

‘맨 뒤에 앉은 할망구, 마스크 잘 써요!’라는 버스기사의 외침은 나를 겨냥한 지적이다. 버스를 놓칠까봐 달음박질했더니 안경에 김이 서렸다. 살짝 내렸는데 바로 들켰다. 얼떨결에 할머니가 된 기분이, 어쩐지 쓸쓸하면서도 묘하게 편안하다. 나태주 시인의 글처럼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고 멀리서 빌어줄 때, 눈물이 질척이면 노인이란다. 이 가을을 온통, 나는 노인으로 살고 있다.

노인의 기준은 몇 세부터일까? 사회적으로는 60세를 전후하여 노인으로 본다. 회갑부터 노인으로 인정하는 사회관습과 정년퇴직, 조부모가 되는 시기 등을 고려했다. 노인복지법에서는 기초연금, 경로우대 등을 감안해 65세를 노인으로 규정한다. 최근 들어 정부는 노인 연령 기준을 70세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그러면 진짜 노년기는 언제부터일까? 100년을 넘어 사시는 김형석 교수에 의하면 ‘성장이 정지되는 때’부터 늙기 시작한다. 노력하는 사람들은 75세까지 정신적 인간적 성장이 가능하므로 인생의 황금기가 60~75세 사이다. 그러므로 75세 이후부터 늙어가다가 80세가 되면 노인이 되는 것이다. UN이 발표한 연령 기준에 따르면 0~17세는 미성년자, 18~65세는 청년, 66~79세는 중년, 80세 이상은 노인이다.

평생교육의 관점에서 보면 UN의 기준이 적절하다.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Jiles)이 운영하는 프로그램 중에 ‘평생학습동아리’가 있다.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특정 주제를 학습하고 배움의 가치를 지역사회와 나누면, 강사비나 재료비 등을 지원해서 학습 활동을 촉진하는 제도다. 지난 주말 제주문예회관에서 열린 제노색소폰앙상블의 연주회가 그 사례다. ‘음악으로 여는 희망의 세상!’을 모토로 선배시민 자원봉사단 역할을 겸한 행사다. 20여 명 회원들의 평균 연령은 72세지만, 여학생들은 청순 발랄하고, 남학생들은 쾌활 씩씩하였다. ‘일상에 지친 이웃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주자’는 회장의 인사말에, ‘아프리칸 심포니(African Symphony)’의 웅장한 색소폰 소리가 행진을 시작했다. 할망구 소리에 기죽었던 나의 야성을 단박에 깨울 듯이 활기차다. 하기야 아프리카 초원의 야생동물들을 묘사한 곡이 아니던가. 얼룩말들이 동터오는 들녘을 향해 질주하듯 발갛게 상기된 연주자들은 하나같이 맥박이 고동치는 청년들이다. ‘세월은 우리의 주름살을 늘게 하지만, 열정을 가진 마음을 시들게 하지는 못한다’는 사무엘 울만의 청춘처럼.

한편, 2019년 말 현재 65세 이상인 제주도의 노인 인구는 10만769명으로 전체 인구의 14.5%를 차지한다. 이미 고령사회다. 80세 이상은 전체 인구의 3.8%로, 증가율이 가장 높다. 100세 이상 장수노인이 244명. 전국 최고의 장수율이다. ‘장수의 섬’ 브랜드가 무색하지 않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해서 Jiles는 금주말에 시작되는 제주포럼에서 ‘포스트 코로나-새로운 평생교육 세기의 시작: 노년의 재발견’이란 세션을 진행한다. 김형석 교수는 ‘60세부터 80세까지가 가장 행복한 삶이 될 수 있다’는 제목의 기조연설을 한다. 만일 100세 시대를 표준삼는다면 ‘80쯤 되었을 때 자기반성을 해보자’는 노교수의 강연이 자못 기대된다. 그가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뒤늦게 발견한 인생의 교훈은, ‘50에서 80까지는 단절되지 않은 한 기간으로 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80이 되었을 때 완성될 삶의 조각품을 바라보면서 제 2의 마라톤을 시작한다면, 60대는 ‘할망구가 아님’을 발견한다. 아니, ‘100년을 살아보니 아직 철이 덜 든 청년’이라는 진단이 옳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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