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위기 이겨낸 도전 정신으로 IT업계 ‘두각’
숱한 위기 이겨낸 도전 정신으로 IT업계 ‘두각’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회사 입사해 지식 습득…5000만원으로 초기 사업 시작
국내외 중고 네트워크 장비 판매…코로나19 영향 적어
“제주, 많은 국책 사업 진행…핵심 부문 지역 업체 맡겨야”
강철지 ㈜아이피로드 대표(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본사 직원들과 함께한 모습. 강 대표는 2008년 4월 정보통신 기술 분야 벤처기업인 아이피로드를 설립했다.
강철지 ㈜아이피로드 대표(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본사 직원들과 함께한 모습. 강 대표는 2008년 4월 정보통신 기술 분야 벤처기업인 아이피로드를 설립했다.

강철지 아이피로드 대표(48)는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 출신이다.

51녀 중 막내로 태어났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어릴 때부터 형제들과 함께 부모님이 하는 농사일을 거들며 자랐다. 어려운 형편에도 기계를 농사와 일상생활에 적용하며 늘 변화를 시도했던 부친의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기계와 전자 분야에 관심을 가졌다.

대학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한 강 대표는 졸업 후 한동안 중소기업에서 전산 계통의 일을 하다 사표를 내고 20084월 정보통신기술(IT) 분야 벤처기업인 지금의 아이피로드를 설립했다.

성장 배경

강 대표가 태어난 1970년대 초반 서귀포시 성산읍 일대 주민들은 고구마, 유채, , 감자 등 밭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이어갔다.

방과 후 형제들과 함께 부모님을 돕기 위해 밭에서 일하는 시간이 많아 학교 공부는 제대로 할 수 없었지만, 그에게는 6남매에 대한 부모의 사랑과 형제들의 우애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한 해 농사를 망쳐도 좌절하지 않고 다음 해를 준비하는 부모님의 모습에서 자연스럽게 도전정신을 배울 수 있었다. 어릴 적부터 비행기 조종사가 꿈이었던 강 대표는 중학교 시절 공군 기술학교 진학을 고민하다 세화고를 들어가 장학금을 받으면서 대학교 진학하기로 결심하고 울산대학교 산업공학과에 입학했다. 학과는 대학에서 각각 경영학과 전자공학을 전공한 두 형님의 영향을 받았다.

벤처기업 설립

강 대표는 대학 졸업 후 한국까르프에서 근무하다 벤처 붐 시대를 맞아 친구의 권유로 통신 단말기를 개발하는 벤처회사에 입사했다. 그는 그때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많은 지식을 습득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 RF 지식과 네트워크 기술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였던 것이다.

강 대표는 월요일 오전에 출근하면서 일주일 동안 입을 옷들을 배낭에 챙겼고, 토요일 오후에 퇴근했다. 4년 동안 이런 생활을 보냈다고 회상했다.

강 대표는 당시 IT 관련 업계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많았지만, 관심은 오로지 창업에 있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이 일본 모 업체로부터 10억원 투자를 유치했다며 동업을 권유하자 흔쾌히 응했다. 이후 회사 대표와 추구하는 방향이 달라 독립하며 혼자 지금의 회사를 창업했다. 마이너스 통장과 아내 이름으로 3000만원을 빌려 자본금을 마련했다.

회사 운영

당시 5000만원으로는 네트워크 장비를 구매하고 판매하는데 턱없이 부족했다. 강 대표는 사무실을 구하지 못해 임시방편으로 아는 선배 회사 주소로 법인 신고를 했다.

처음에는 관리, 엔지니어, 구매 업무를 전부 혼자 해야 했기 때문에 하루에 2시간 정도 잠을 자면서 일했다. 처음 뽑은 사원은 공무원 시험에서 3번 떨어졌고 네트워크의 도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일하겠다는 의욕이 강해 선택했다. 그 후 두 번째 채용한 직원은 옛 직장동료로 사업이 어려워 신용불량자 상태였다. 이렇게 3명으로 회사 초기 사업이 운영됐다.

지난해 10월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9 글로벌 제주상공인 리더십포럼에서 패널로 참여한 강철지 ㈜아이피로드 대표가 발표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9 글로벌 제주상공인 리더십포럼에서 패널로 참여한 강철지 ㈜아이피로드 대표가 발표하고 있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강 대표가 초기 사업을 시작하고 주로 판매했던 것은 중고 네트워크 장비였다. 네트워크 엔지니어이기 때문에 해외 수입 후 테스트하고, 이후 필요한 고객에게 판매하는 원스톱(one-stop) 서비스를 활용함으로써 고객은 비용 절감을, 회사는 많은 이윤을 추구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IT 트렌드가 너무 빨리 움직였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 한국 중고네트워크 단말기를 13만 개를 미국에 판매했다. 미국에서 수입한 장비를 다시 미국에 판 셈이다. 이러다 보니 점점 욕심이 생겼다. 새 장비를 만들어서 전 세계 어디든 팔아보자는 생각이었다.

벤처회사 때 만난 개발조직 선배 후배들을 불러서 조직을 꾸려 개발을 했지만, SKTSKbroadband가 합병이 되면서 파업을 했고, 인증 테스트가 1년간 늦춰지면서 인력 비용 손실이 어마어마했다.

인원이 45명 정도여서 월 고정 지출이 3~4억이었다. 자금이 없어서 제2금융, 카드 돌려막기, 사채까지 써봤지만 살아날 수가 없는 상황에서 지출을 줄여야만 했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모바일 개발팀과 유지보수 및 영업팀을 각자 소생할 수 있도록 분리했다.

회사를 분리하면서 많은 어려움은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잘했던 판단인 것 같다. 10억 원의 빚과 직원 2명을 가지고 다시 새롭게 출발하며 힘들었지만 지난 지금은 빚은 다 갚고 든든한 직원들로 채워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IT업계가 힘들다

강 대표는 코로나19에 따른 언택트 시대에 언텍트 시대에 필요한 무선 통신장비를 하다 보니 타 업체보다는 영향을 덜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초 일본 케이블사업자와 유지보수 계약을 체결해야 하는데, 출장을 갈 수 없어서 계약이 연기되는 부분과 인도네시아 지사 비즈니스 확장을 위해 출국해야 하는데 코로나19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 놓였지만 강 대표는 이를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부분을 준비하는 기회로 생각하고 있다.

기억에 남는 일은

“2013년이었던 것 같다. 알고 있던 업체 대표가 자금이 어려워 해외 수입을 대행해달라고 요청했고 많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진행해주었던 적이 있었다.”

강 대표는 아무리 기다려도 결제가 되지 않아 찾아갔더니 돈은 없으니 수입했던 영국 제품에 한국판권을 준다고 해 돈 대신 영업권이라도 챙기기로 했다. 문제는 제품이 좋았지만, 가격이 너무 높아 우리나라에서 판매가 되지 않아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고 밝혔다.

강 대표는 영국 본사 영업이사와 많은 협의를 했음에도 가격 조율은 불가능했고, 그러다 보니 영업 부문을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2015년 인도네시아에서 사업을 시작하면서 우리나라에서 못 팔고 있던 영국 제품을 인도네시아에 팔게 되었고, 그것이 가장 어려운 시기에 회사를 살려낼 수 있는 효자 상품이 됐다. 지금은 연간 20만 개씩 4년간 수출을 하고 있다.

강 대표는 베푼다는 것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보상을 바라면서 베풀지는 않지만 음으로 양으로 뭔가가 좋게 만들어지는 것 같다고 밝혔다.

네트워크·모바일 사업 부문에서 제주가 관심을 가져야 할 방향은

제주에서는 많은 국책 시범 사업이 진행됩니다. 육지처럼 환경변수가 많지 않아 편하게 시범 사업이 이뤄지면서 제주지역 중소기업에는 아주 좋은 기회인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는 게 아쉬운 부분입니다.”

강 대표는 국책 사업 진행 시 핵심 부문을 제주지역 개발 업체에 맡겨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기회를 만들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강 대표는 국책 사업은 보통 2~3년 정도 하는데 그 정도 기간에 어떤 업체든 제품이나 솔루션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제주도에 있는 관공서에서 지역업체 육성이라는 명목으로 추진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제주에서 진행되는 국책 시범 사업을 들여다보면 육지업체가 구축 후 제주도업체는 유지·보수하는 것으로 끝나다 보니 정작 본 사업이 시작되면 제주지역 업체가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적은 게 사실이다. 조금 더 지역업체들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사업이 진행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