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롱에 담겨진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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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현 수필가

자동차 행렬로 입구는 앞차 꽁무니 붙잡고 느릿하게 움직이는 차나, 인도를 밟으며 장으로 향하는 행인들 걸음이나 속도감은 얼추 비슷하다. 모처럼 찾은 오일장 날이다. 계절 무색한 햇살에 손차양을 하고 인파에 떠밀리듯 걸었다.

어쩌다 온 걸음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장엘 오는구나.’ 하는 생각에 혼자만 다른 궤도를 돌다 온 것처럼 느껴졌다. 장터로 향하는 길 한 모퉁이에는 담벼락을 끼고 감자밭 하얀 꽃들이 초록과 어우러져 그지없이 곱다.

먹거리 주변으로 서서 먹거나, 이동하면서 끼리끼리 맛나게 먹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타인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편안함이 좋아 보여 같이 대열에 끼어 음식을 샀다. 받아 든 컵 음식을 먹으며 즐기듯 걷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다.

수십 년 전, 제사를 모시게 되면서부터 제 음식을 마련한 후, 종류별로 담아 층층이 뚜껑을 닫고, 크기별로 올려놓을 수 있게 손끝 야무진 이가 만든 죽제품인 차롱. 보관 시 큰 것 속에 작은 것들을 차례로 담아 공간을 최소화할 수 있게 촘촘히 엮어 만든 네모난 차롱을 장만했었다.

내 결혼생활과 비슷한 세월을 크고 작은 집안 행사 때마다 꺼내 쓰느라 거칠고 날 섰던 것은 세월과 손길에 이도 순해져, 손에 닿는 느낌도 좋고 이젠 아끼고 싶은 세간붙이 중 하나가 되었다. 차롱착이라 부르던 뚜껑은 푸성귀를 씻거나, 음식을 준비할 때 물 빠짐이 쉽고 또 가벼워 쓸 때마다 여간 편리한 게 아니다.

이런 이유로 자주 쓰던 중 어느 해, 명절 준비로 전을 지져 한 김 식히는데 휴대용 버너가 옆에 있었던 터라 기름기 묻은 부분에 불이 옮겨 붙은 것이다. 엉겁결에 불은 껐으나 씨줄 날줄 엮인 모서리 부분이며, 바우 대 부분이 누렇게 탄 채 해지며 풀리기 시작했다. 볼 때마다 부주의로 타버린 곳이 영 거슬려 몇 번이나 새로 하나 장만해야지 생각하던 참에 나선 걸음이다.

장터 한 모퉁이 죽제품 파는 곳 서너 군데를 두리번거려도 찾는 물건이 안 보여 주억거리는 모습에 가게 주인이 찾고 있는 물건이 뭔지를 물었다. 설명하자 ‘그런 차롱을 겯던 이가 돌아가셔서 이젠 사기 어려울 것’이란 말을 전한다. 언젠가 어머니께서 ‘도련에서 만들어 낸 차롱은 눈감고도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손끝 야무진 이가 곱게 만들어 한때는 그걸 사려고 사람들이 줄을 설 정도였다’는 말까지 그 숱하게 들은 이야기 중에 끼어 나풀거렸다.

차일피일 미룬 것이 순간 후회되었다. 돈만 들고 나서면 살 수 있으리라 생각되던 물건이 돈을 들고도 구하기 힘들게 되어버렸다. 편하고 좋은 게 넘치도록 대체재가 많음에도 얼른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은 담아낸 음식과 함께 버리기 아까운 시간들도 같이 담겨졌던 것일까. 오일장에서 기웃거리며 찾고자 애쓴 것은 씨줄과 날줄에 배어 든 손때처럼 오랜 시간 같이한 세월의 더께일지도 모른다.

손차양하며 왔던 길 따라 계절을 이고 섰던 하루해가 가쁜 숨 몰아쉬는데 하늘 곁자리로 바람이 산산이 흩어진다. 모퉁이 돌아 나오며 본 감자밭 흰 꽃들, 그 바람결 붙잡은 채 꽃들은 모가지를 길게 빼고 이랑과 이랑을 희롱하고 있다. 세월에 순응하느라 많은 것들이 저 감자 꽃처럼 바쁜데 갑자기 중심 잃은 생각만 무시로 헐겁다.

오래전 풀린 부분에 삼베 조각을 덧대어 꿰매 썼듯이 아쉬운 대로 다듬어 써야 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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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석 2020-11-02 19:13:06
새벽 물안개피는 산골 작은저수지 같은 글 임니다

이태석 2020-11-02 19:11:18
새벽 물안개피는 산골 작은저수지겉은 글 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