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도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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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석, 제주대학교 경영정보학과 교수/논설위원

수학에서 집합이란 어떤 대상들의 모임이라고 정의된다. 예를 들어 어떤 집합이 {2, 4, 6, …}이라면 짝수 집합이라고 정의하고, 집합 {개, 소, 말, …}에 대해서는 동물 집합이라고 정의한다. 정작 짝수 집합에는 ‘짝수’가 없고, 동물 집합에는 ‘동물’이 없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모든 집합을 다 정의할 수 있을 것처럼 짐작되지만 정작 자신이 포함되지 않는 집합이 있게 마련이다. 노벨상을 수상했던 버트런드 러셀은 “집합을 원소로 갖는 모든 집합의 집합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컴퓨터는 0과 1의 이진법으로 빈칸을 채우지만 아날로그 실선을 모두 메꾸지는 못한다. 법 규정도 1번 조항, 2번 조항, …, n번 조항으로써 무한개의 조항을 만들면 세상 모든 일에 다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않다. “모든 것을 녹이는 물질이 이 병 안에 들어있다.”라는 말은 틀렸다. 왜냐하면 그 물질이 모든 것을 녹인다고 하였는데 병 안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모든 것을 녹이는 물질은 없다. 어떤 것도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다.

규제는 양날의 검과 같다. 규제의 메커니즘은 타율에 의한 통제이다. 부당한 이득을 보는 시장참가자를 방지하려면 규제가 필요하다. 규제가 지나치면 개인의 창의와 자유가 제한을 받는다. 자율이 지나치면 질서가 무너진다. 정부는 규제개혁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 범정부적으로 추진해왔다. 규제개혁은 경제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중점적으로 관리하는 핵심정책이다. 정부는 법정 상설기구로서 규제개혁위원회를 설치하고 각종 민원창구도 마련하였다. 더욱이 기업환경 개선이라는 전통적인 목표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민생을 위한 규제개혁까지 확대하여 추진하고 있다.

규제개혁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연구원에서 2019년에 규제개혁에 대한 체감도를 조사한 결과는 개혁 체감도가 오히려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락의 주요 원인은 ‘보이지 않는 규제 해결 미흡’이었다. 보이지 않는 규제는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지만 형식이 법에 근거하지 않는 규제를 말한다. 업무협조, 가이드라인, 권고, 지침 등 상대방의 임의적인 협력을 전제로 하는 행정지도의 영역에서 주로 나타난다. 행정지도는 법의 규제가 아니기 때문에 규제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이 때문에 행정지도는 규제개혁의 사각지대에 놓여 개혁의 대상이 된다.

문제해결에서 뭔가를 더하는 것보다 빼는 것이 더 어렵고 창의적이다. 필요한 기능이 있을 때마다 더하는 아이디어는 생각하기 쉽지만 더한 만큼 복잡해지고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문제가 나타난다. TV 리모컨은 필요한 기능이 나타날 때마다 버튼을 더하여 버튼 수가 한때 113개로 늘었다가 지금은 5개로 줄어들었다. 생텍쥐페리는 “완벽함이란 더 이상 더할 것이 없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스티브 잡스는 경쟁 회사들이 모두 휴대폰에 자판을 넣고 있을 때 그는 자판을 없앤 터치 스크린으로써 휴대폰의 혁신을 만들었다.

시인 정호승은 “하늘의 그물은 성글지만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합니다.”라고 썼다. 사람이 하는 일이란 늘 불완전하다. 법과 규정만으로 세상 모든 일을 규정하고 통제할 수 없다. 법 규정뿐만 아니라 이익을 추구하는 시장참가자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정이 되고, 사회구성원의 자발적인 신뢰가 함께 작동할 때 사회는 더 효율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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