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현실
슬픈 현실
  • 제주일보
  • 승인 202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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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명상가

먼 길 떠났던 나그네가 모진 풍파와 시련을 겪고 고향에 돌아올 때의 안락함이 죽음이다

만남과 헤어짐은 동시에 이루어지고 필요한 과정이다. 어르신들의 삶의 애환을 들어보면 책으로 몇 권을 써도 부족하다. 지우고 싶은 과거도 있고 침이 마르지 않는 자랑에 어깨까지 들썩인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가지려는 욕심과 나로 인한 누군가의 슬픔이 기억 저편에서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는다.

살아가는 데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본질을 깨닫는 공부는 책에 있는 내용이 아니라 사랑과 용서, 배려에서 나온다

찾아오신 손님은 얼굴에 우환이 가득했다. 곧 대학입시를 앞둔 아들은 착하다는 소리를 듣는 모범생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상한 행동을 한단다.

대화 상대도 없는데 혼자 말을 하고 누군가와 끊임없이 싸운단다. 욕은 예사요, 눈빛이 달라질 때는 다른 사람 같단다. 그러다가 몸이 너무 더럽다고 화장실에서 몇 시간씩 씻어대고 아이답지 않은 신세 한탄과 푸념이 잠도 잊은 채 이어진단다. 당장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상황인 줄 알지만 아들이 완강히 거부하고 있고 흉한 소문이라도 날까 이도 저도 못한단다.

원인을 알면 쉽게 풀리는 문제라 집으로 찾아갔다. 그러자 아이고 오셨어요.”라며 마치 오랜 지인을 만난 듯 반가워했다. 그러고는 벽에다 귀를 대고 나보고 들어보란다. 지금 영감이 바람을 피우는데 가관이란다.

이런 진지함에 옆을 지키던 부모는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안심하라고 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알게 된 사연은 윗대의 할아버지가 후손을 보지 못해 노심초사 고민 끝에 작은 색시를 얻어야 했고 그게 보기 싫어 할머니는 마을에서 떨어진 곳에서 홀로 생활했다. 겉으로 내색은 안 했지만 외롭고 쓸쓸한 인생을 사셨을 것이다

임종을 앞두고는 묘를 쓰되 합장을 하지 말고 산등성이 넘어 멀찍이 묻어달라는 마지막 당부를 남겼단다. 당시에는 그렇게 해드렸지만 가족 납골당을 만들다 보니 어쩔수 없이 한 공간에 모셨단다.

이유야 어떻든 분란의 씨가 될 수 있으니 지금이라도 원래의 장소로 유골을 옮기지 않으면 자녀의 병은 고치기 어려울 거라고 하니 무조건 알았단다.

그 후 겉으로 나돌던 가장도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는 소식은 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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