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두고 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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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방영, 시인/논설위원

밭에 뿌린 상추씨에서 어린 싹이 잔디처럼 빽빽이 나서 솎아내니, 젖을 빨던 입처럼 하얀 실뿌리들이 고운 흙가루를 묻힌 채 나왔다. 근원에서 제거된 생명체의 모양이 태반에 착상한 탯줄이 떼어진 듯, 우주를 부유하는 우주인의 우주복에 모선과 연결된 줄이 잘라진 듯 했다. 덩달아서 우리의 생명줄을 잡아주고 있는 이 대지와 지구 생각도 났다.

2500여 년 전 그리스의 한 시인은 세상 떠날 때를 상상하면서 ‘두고 가야 하는 것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태양과 별과 어머니 같은 달의 얼굴이며, 거기 더해 제철의 오이와 사과와 배들’이라고 썼다. 그러나 어디 그뿐이겠는가, 이어지는 일상의 잔잔한 아름다움과 애틋함과 신비가. 속삭임처럼 고즈넉하게 내리는 비와 산들바람, 새들이 나는 하늘 위에 날마다 풍경을 바꾸는 구름, 나비가 찾는 여름 꽃들이 떠나면 다시 영롱하게 빛나는 가을꽃들과 단풍든 나무에서 반짝이는 열매들. 눈보라와 태풍에 요동치는 바다…. 어쩔 수 없이 유한한 삶은 때가 되면 떠나보내야 하는 연인처럼 세상을 놓기 싫어도 놓아줘야만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문명은 이 아름다운 세상에 어떤 발자국을 남기고 있나. 바다 밑에 날마다 쌓이는 거대한 플라스틱 퇴적층과 더불어 우리 후손들은 불안정한 지구에 살 것으로 예상된다. 미세먼지로 뿌연 대기 속에서 염려스러운 날들이 이어지다가 느닷없이 등장한 신종 바이러스, 그 강력한 감염력이 계속 인류 활동을 제한하고 있다. 걸핏하면 송곳니를 드러내며 달려드는 맹견에게 입마개를 씌우듯, 입과 코로 바이러스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해칠까 봐서 이제는 우리가 입마개를 착용한다. 바이러스는 얼마나 떠돌다 사라질 것인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우리는 갖가지 생각들을 입마개에 걸어놓고 막연히 미심쩍은 시선을 교환한다.

한편으로 이런 상황은 지금까지 인류가 달려온 길에서 잘못된 점들을 찾아보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가 미래 세대에게 어떤 남길 희망을 남길 것이며, 이제라도 어떻게 좋은 조상이 될 수 있는 길이 있는지 모색하게 한다. 우리가 지금 내리는 결정과 행동이 후손들의 미래에 큰 영향을 줄 것이므로, 우리는 자연을 인격체로 대하고 지구를 사랑하면서, 세대 간의 정의를 실현하여, 사회에 불평등을 바로잡아 전반적인 선을 진전시키는 것이 미래 세대를 위하는 일이라고 한다. 환경의 재활성화는 사회에 만연한 불균형을 교정하는 일과 무관하거나 따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대 간의 이해와 연결도 자연과 인간의 단절. 약자들의 고통과 여러 문제를 해결해야 가능하다는 관점이다.

자연의 생명력 복구를 촉진하기 위해 지구 곳곳에서 대량의 나무 심기 운동이 벌어지고, 2050년경에는 탄소 없는 푸른 세상 창조로 기후 변화의 속도를 늦추며, 생명 다양성을 회복함으로써 지구 환경을 회복시키려는 노력이 전 세계적으로 이어지는 중이다.

녹으면서 바다로 떨어지는 북극의 얼음덩어리를 보면 우리를 조여 오고 있는 온난화의 위협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또한 인류의 미래를 전환시킬 수 있는 기간은 앞으로 10년 정도라니, 헤엄을 쳐서 겨울 호수가 어는 것을 막으려는 동화 속 오리 같이 역부족인 처지로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맞고 있는 위기의 시대에 자칫 놓치기 쉬운 희망의 끈을 단단히 붙들고, 최대한 낭비를 줄여 쓰레기를 최소로 하는 삶이라도 실천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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