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국선열의 날에 즈음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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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두흥 수필가·논설위원

내일 11월 17일은 법정기념일인 순국선열(독립유공자)의 날이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찬탈당한 날인 11월 17일을 기억하기 위해 193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이날을 기념일로 삼았다. 그 후 1997년 법정기념일로 제정, 국가보훈처에서 주관한다. 이날은 순국열사에 대한 공로를 기리고, 기념행사로 시 낭송과 공연 등으로 진행된다.

조선 시대는 의로운 일을 한 사람 중 양반은 의사, 평민은 열사라고 했었다. 의사와 열사를 민족 영웅으로 추모하고 기념하던 식민지 시기와 해방 초기까지도 특정 인물을 의사로만 혹은 열사로만 호칭하는 뚜렷한 기준은 없었다. 조선말 신분적으로 구분했던 양자의 구별이 폐지되면서 의사나 열사의 기준이 더욱 모호해졌다. 안중근 열사라는 기록이 나오는 것도 그 까닭이다. 반드시 기준을 정할 필요가 있다.

1970년대 원호처, 지금의 국가보훈처 산하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가 기준을 확정했다. 순국선열로 의사(義士)는 무력으로 독립운동을 한 분으로 안중근, 윤봉길이다. 열사(烈士)는 맨몸으로 독립운동을 하신 유관순, 이준이다. 지사(志士)는 독립운동은 했으나 순국하지 않은 분으로 장지연, 서재필, 안창호다. 의병장(義兵將)은 군사를 일으켜 저항한 분으로 김좌진, 홍범도다. 독립운동 참여자는 약 15만 명으로 추산된다. 반면 호국영령은 국가의 부름을 받거나 자원해서 전장에 나가 적과 싸워 나라를 지키다 희생된 이들을 말한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 과정에서 수많은 열사가 등장했다. 노동해방 열사, 민족해방 열사, 통일열사 같은 독재 권력에 의해 혹은 스스로 몸을 불살라 죽음을 맞은 노동자, 농민, 학생이었다. 그들은 대체로 젊었고 죽음으로 그 대의를 드러내었기에 항상 ‘열사’로 기억되었다. 이들을 ‘열사’로 호명한 것은 정부가 아니라 민중운동 세력 스스로다. 오늘날 열사와 의사가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최근 생활에서 의로운 행동을 한 이를 ‘의인(義人)’이라 한다. 민족 영웅에 대한 의사와 열사의 관념적 구별과 함께 국가공동체가 아닌 생활공동체에 헌신한 인물에 대한 용어의 적용은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닌가.

현충일이 호국영령들의 넋을 위로하는 날로만 인식된 지 오래다. 또한, 학교에서 계기 교육으로서 학생들에게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관한 올바른 이념교육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순국선열의 날은 법정기념일이나 공휴일에서 제외됐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의해 강제로 주권이 빼앗겼을 당시 세계평화회의에 참가할 기회조차 박탈당했다. 참으로 분통한 일이었다.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선열들의 희생으로 편히 살아가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한 번쯤 되짚어 보고 그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 광복절이나 현충일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음은 물론 그 의미조차 잘 알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는 과정은 수많은 혼란과 핍박의 역사 속에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다. 순국선열을 추모하고 긍지를 갖기 위해서라도 기념일 정도는 잊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공휴일로 지정된 현충일도 역시 순국선열과 호국 장병을 기리는 날이다. 순국선열의 날은 이 현충일보다 그 역사가 17년이나 앞서 있다.

내일 아침 조기를 게양하고 가까운 순국선열 기념식이나 추모제에 참석하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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