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 선언과 송악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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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논설위원

언행일치의 결실은 창대했다. 삼성을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이끈 것은 1993년 이른바 ‘프랑크푸르트 선언’이다. 고(故) 이건희 회장은 삼성그룹 사장단을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모이도록 해 신경영을 선언했다. “자식과 마누라만 빼고 다 바꿔라”라는 말은 그동안의 의식, 체질, 관행, 제도를 양 위주에서 질 위주로 혁신하라는 강력한 주문이었다.

그는 정치권에도 쓴소리하는 강심장의 소유자였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 4월엔 중국 베이징 주재 한국 특파원과의 간담회에서 “우리나라의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고 해 정치권의 심기를 뒤집어놨다. 기업의 발목을 잡는 행정규제를 작심 비판하면서 뒷배인 정치권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다. 이 회장은 “반도체는 중국 장쩌민 국가주석이 ‘연구개발 비용은 얼마냐’고 물을 정도로 관심이 많은데, 우리는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는 데 도장 1000개나 필요하다”고 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지난달 25일 서귀포시 대정읍 소재 송악산 선착장 인근에서 한 ‘송악 선언’을 보면서 어떤 기시감(旣視感)이 들었다.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떠올라서다. 이 회장의 별세 일이 10월 25일이고, 송악 선언도 이날 했기에 기시감은 그저 기시감일 뿐이다.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본떴다고 볼 수 없다.

원 지사가 자신의 송악 선언을 구체화하기 위해 1, 2호 실천 조치를 발표했다. 1호는 송악산과 주변 환경 보전을 위해 그 일대를 문화재지구로 지정하겠다고 했다.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송악산 유원지 개발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의지다.

2호는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일대에 추진 중인 제주동물테마파크 개발과 관련해서다. 주민과의 진정성 있는 협의와 사자, 호랑이 등 맹수와 외래종 동물 도입으로 인한 생태계 변화 우려 등을 사업 승인의 선 조건으로 내세웠다. 사실상 불허하겠다는 것이다.

▲삼성은 프랑크푸르트 선언 후 변화와 혁신을 추구해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했다. 이제 삼성이 없는 한국 경제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

하지만 정책은 기업 경영과 다르다. 민심을 얻어야 탄력을 받는다. 특히 이해관계 당사자인 해당 지역 주민들의 동의가 관건이다. 벌써 1호 조치에 대해 사유재산권 침해 우려 등을 이유로 집단 반발하고 있다. 그래서 송악 선언의 앞길은 험난하다. ‘초지일관이냐, 용두사미냐.’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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