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즈 이후 글로벌 대중음악의 흐름에 방탄소년단이 하나의 거대한 획을 그었다면, 이즈음 국내 대중음악은 트로트가 대세임을 실감한다. 국내 모 TV 트로트 관련 프로그램이 획기적 성공을 거둔 후 유사 프로그램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우리 대중음악의 물줄기를 트로트로 집적시키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다.
사실 트로트라 하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어르신들의 심심풀이 음악 혹은 구시대의 유물로 치부해 왔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 연원을 살펴보면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대중음악인 엔카(演歌)의 영향을 받아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이런 이유로 청산해야 할 비판의 대상이 된 적도 있었다.
아무튼 1920년대 후반에 우리 트로트 창작곡이 등장하였으며, 1930년대 중반에 이르러 주로 ‘라시도미파’의 단조 5음계와 2박자를 기조로 일명 ‘꺾기’라고 하는 특유의 꾸밈음을 지닌 노래로 정착되었다. 고복수의 ‘타향살이’와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로 대표되는 이 새로운 형태의 노래는 국민가요라 불릴 만큼 그 반향이 실로 대단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뽕짝’이라는 다소 비하적 명칭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전통가요’라 불리다가 요즘은 ‘트로트’라는 명칭이 가장 널리 쓰이는 추세다. 그런데 간혹 이를 ‘트롯’으로 쓰는 경우를 보는데, 트롯(trot)은 원래 ‘깡충거리며 속보로 걷는 듯한 말의 걸음걸이’를 의미하는 승마 용어이므로 원어 철자가 같다고 하여 ‘트롯’으로 표기하는 것은 잘못 사용하는 예라 하겠다.
트로트의 가사는 시대상을 반영한다. 초창기 단조 트로트의 가사는 대부분 마치 신파극을 연상케 하듯 삶의 애환, 자신의 처지 비관, 이루지 못한 사랑, 향수 등의 애절한 슬픔을 담고 있다. 욕망의 좌절과 현실에 대한 체념을 자학과 자기연민으로 해소하려는 경향이 뚜렷이 드러나 있다.
1970년대에 이르러 청바지와 통기타로 상징되는 청년문화의 붐으로 포크송과 록이 크게 번지다가 장발 단속과 대마초 사건 등으로 인해 유행의 그림자가 희미해진다. 그 여파로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필두로 트로트는 록 사운드를 결합한 새로운 모습으로 재도약한다. 비극성이 희석된 자리에 경쾌하고 밝은 분위기의 장조 트로트가 스며들어 인기를 얻게 된 것이다.
어느새 소소한 일상마저 더욱 힘겨움으로 다가오는 겨울의 초입이다. 삶의 현실이 지루하고 팍팍하다고 느껴질 때 ‘귀벌레증후군’을 두려워 말고 트로트를 흥얼거려 보는 것도 썩 괜찮은 힐링(healing)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