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잎이 전하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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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구, 시인·수필가·前 애월문학회장

‘아~’ 하고 탄성을 자아내게 했던 광령 천아(치도)계곡의 그 곱던 단풍도 우수수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떨어진 낙엽은 가랑잎이 되어 이리저리 구르고 있습니다. 화려한 단풍의 시절이 있었음에도 미련없이 낙엽이 되어 떨어질 줄 아는 그 슬기로움을 내것으로 하고 싶은 생각을 가져봅니다. 낙엽은 마음속에 이입이 되어 슬픔의 시가 되고 겸손함의 수필이 됩니다. 노래가 되고 시가 되고 작품이 되는 가랑잎. 낙엽이 구르며 아파하는 소리까지 들을 줄 알아야 시인이 되고 수필가가 되는 거라 하시던 학창 시절의 국어 선생님 말씀에 숲에서 눈을 감고 한동안 소리를 찾았지만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소리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초콜릿색 가랑잎은 달콤한 추억의 소리를 전하고, 노란색은 떠난 사람의 그리운 감정의 소리를, 붉은 색의 가랑잎은 정열과 청춘의 추억을 전하는 계절의 소리일 것입니다.

이처럼 찬바람이 불면 나무들은 잎새를 내려 놓습니다. 우리에게 욕심을 버리고 추하게 늙지 않는 방법을 가르쳐 주려고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저러고 있나 봅니다. 나무들이 산야에서 제멋대로 자라고 있는 듯 하지만 저마다 나이테라는 이름의 연기를 쓰고 있습니다. 어느 해는 추위가 심했고, 가뭄이 있었나를 판독할 수 있는 세월의 흔적을 차곡차곡 남겨 놓아 대책없이 무작정 살고 있는 인간들에게 또 하나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자연의 순리를 보편적 삶의 덕목으로 삼으려 하지만 실천하기가 쉽지 않아 그들의 행사에 경의를 표합니다. 탐욕의 포로가 되어 아등바등 숨가쁘게 살고 있는 군상들에게는 자연이 연출하는 이치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모를 수밖에 없겠지만 가끔은 자연의 소리에 귀를 열어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른 봄 부터 천아계곡을 자주 찾았습니다. 가파른 계곡 능선 돌부리 위에 뿌리 내리고 꽃도 피우고 진한 향기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때가 되면 그 향기도 단풍의 고운 자태도 미련없이 훌훌 벗어버려 돈과 명예를 놓지 않으려고 안달하는 우리 인간들에게는 부끄럽게 하는 듯 합니다. 지친 삶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가랑잎 편지는 봄이 머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사랑의 전령이 되어줍니다. 무심한 듯이 서걱이며 산야에 쌓여 있던 낙엽들은 때가 되면 발효를 통해 거름이 돼 흙과 동화되는 순리에 앞에 겸손을 배우게 됩니다.

가랑잎이 전하는 메시지에 귀을 열고 가슴을 열어야겠습니다. 누군가가 내게 자연의 순리가 무엇이냐고 물어 온다면 겸손과 사랑이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을 꼽으라면 나는 당연히 겸손이라는 덕목을 꼽겠습니다. 똑똑하지만 겸손하지 못한 사람은 쌓아놓았던 것을 반드시 한꺼번에 쏟아버리는 우를 범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시작은 어려울수록 말 한마디, 표정 하나라도 나눠야 합니다. 코로나19로 경제한파 등 매서운 겨울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힘들어할 때는 따뜻한 위로를, 세상이 나태하고 흥청망청할 때는 따금한 사랑의 질책도 필요합니다. 부귀영화는 잠시 스쳐가는 것일 뿐, 인생이 지나가면 돈이 아니라 베푼 덕만 남는다는 법정 스님의 말씀이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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